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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간의 서식을 정인자2.0으로 바꾼다면?

워크룸 이경수

연관 폰트 정인자2.0

Q. 산돌 구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워크룸이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이경수입니다.

Q. 이번 전시의 작업물로 안삼열 정인자2.0을 사용하셨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전시와 어떤 작업을 해주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이번 달 10월 5일부터 한달 동안 서울역284을 비롯해 서울의 몇 군데 지역, 그리고 파주에서 동시에 열리는 공공디자인 전시입니다. 아시다시피 공공디자인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공공영역에 적용하는 디자인을 의미하는데, 이번 전시는 공공디자인의 개념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작업부터 제가 담당한 민원 서식처럼 그 형태가 구체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전시는 길, 몸, 삶, 터, 이렇게 4가지의 주제로 공공디자인을 다루는데, 저는 그중 삶에 해당하는 섹션에 일상, 소외, 소수를 위한 공공디자인으로 동 주민센터의 민원 서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길몸삶터 전시 포스터 (출처: 서울역 284)

<모두의 민원> 이경수, 신주화 (출처: 이경수)

Q. 예민하고 섬세하게 작업하시는 걸로 잘 알려져있는데, 정인자2.0 이라는 폰트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민원 서식은 가장 많은 사람이 접하는 가장 공적인 서식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가능한 일상의 범위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출생 신고부터 사망 신고에 이르기까지 인생 주기에 따라 접할 수밖에 없는 인쇄물인데요. 그 때문에 서식에 적용된 폰트는 무색무취의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것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세리프(명조)는 가독성이 좋지만 문서처럼 표가 많은 지면에는 정리하기 쉽지 않고, 산세리프(고딕)는 깔끔한 배열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가독성에 호불호가 있습니다. 정인자는 자소의 기울기가 크지 않아 가독성과 정리 측면에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의 민원> 이경수, 신주화 (출처: 이경수)

Q. 작업물 특성상 약물(기호)라던지, 숫자를 많이 사용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셨나요?

정인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문장 부호를 비롯한 동글문자(써클 넘버) 등의 특수문자 때문이었습니다. 정인자의 문장부호는 지극히 한글에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한글 폰트에서 구두점을 제외한 부가기호의 기준선과 앞뒤 간격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인자의 괄호는 다른 폰트에 비해 비례폭이 넓어 앞글자, 뒷글자와의 공간이 적당합니다. 문서의 특성 상 매년 갱신해야 하는 환경에서 별도의 조정 없이 기본값만으로 자연스러운 배열이 가능하다는 것은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양한 동글문자 또한 굉장히 신경을 쓴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Q. 공공문서에는 동글문자 나 한자, 다국어를 위한 글자 등등 다양한 글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공적인 문서에 쓰기 위해서 폰트가 갖춰야 할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민원 서식의 내용이 워낙 다층적이라 글자의 생김새가 도드라지기 보다는 글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형태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정리 측면에서도 용이하도록 자소의 기울기 또한 중요하고요. 문서의 내용 중 법령을 기준으로 세부항목을 다양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동글문자의 종류도 다양해야 합니다.

정인자에는 한자까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돌명조 내 한자를 적용했는데 정인자의 글자 크기보다 작은 크기의 이유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글 폰트에 모든 한자를 담기는 불가능하지만 문서 내에 자주 사용되는 한자를 몇 글자 넣어도 좋을 듯합니다.

<모두의 민원> 이경수, 신주화 (출처: 이경수)

Q. 정인자2.0 싱글 웨이트로 디자인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프로젝트 시작 단계에서는 지금의 2.0이 아닌 이전 버전의 정인자를 사용했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이후에 폰트를 디자인한 안삼열 디자이너에게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 받았는데 몇 가지가 개선된 정인자 2.0을 추천 받았습니다. 현재 정인자 2.0은 10가지의 굵기 종류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전 버전은 Regular의 굵기라 해당 가족으로 적용했습니다. 나머지 9종류의 가족이 있음에도 하나의 굵기로만 적용한 이유는 문서에 담기는 변화의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 개선한 민원 서식에는 정인자 2.0 Regular 하나의 타입페이스를 19pt, 9.5pt, 7.5pt 세 가지 활자크기로만 구성하였습니다.

Q. 정인자2.0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자가 있으신가요? 단어나 문장으로 조판했을 때 정인자2.0와 잘 어울리는 단어를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처음 작업한 서식물이 ‘출생신고서’였는데 다섯 글자의 생김새가 정인자로 적용했을 때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모두의 민원> 이경수, 신주화 (출처: 이경수)

Q.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폰트 선택에 굉장히 예민하실 것 같은데, 폰트를 고르실 때 갖고 계신 기준이 있나요? 가장 좋아하는 폰트는 무엇인가요?

시도를 두려워하는 편이라 오히려 특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폰트보다는 검증된 폰트를 자주 사용하고 컨셉을 담아야 할 경우엔 같은 공간에 있는 ‘양장점’과 협업하곤 합니다. 그 외 안삼열 디자이너의 폰트를 좋아하는데 그의 폰트에는 상쾌한 느낌이 있습니다. 정인자가 세리프(명조)와 산세리프(고딕) 사이에 존재하는 느낌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