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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상록'의 북디자이너 함지은

서고 앞에 선 여러분들은 책 한 권을 어떻게 고르시나요?
눈길이 머무르는 색감, 손에 안착하는 무게감, 손끝에 스치는 종이의 질감, 이야기를 녹여내는 서체까지,
오롯이 생동하는 감각들이 우리를 이끕니다.
"종이책은 독자와 공간으로 연결되고, 이에 따라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말입니다.
북디자인이란 어쩌면 책이라는 명징한 물성을 매개로 감각을 매만지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함지은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개별 작업기를 통해 북디자인의 세계를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언제나 푸르를
북디자인 스튜디오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북디자인 스튜디오 '상록'을 운영하고 있는 북디자이너 함지은입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오랜 기간 일하시다가 ‘상록’이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하셨어요. 요즈음 여러 일정으로 바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올해 초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만드는 일에만 집중해 오다가 최근에 강연이나 인터뷰, 세미나 등으로 다양하게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4년 간의 디자인 팀원, 6년 간의 디자인 팀장을 거쳐오시면서 독립을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지은님만의 스튜디오에 대한 꿈이 있으셨나요?

사실 처음부터 독립에 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업계 선배들께서 자주 해 주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일을 딱 10년만 해 보라는 말이었거든요. 그 말을 동력 삼아서 꾸준히 일하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상록’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곧고 푸릇푸릇한 느낌과 차분한 느낌이 함께 들어요.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제 이름을 넣어 무난하게 지을까 하는 고민을 마지막까지 하다가, ‘상록’이 어느날 떠올랐는데 이름을 고민하던 때가 겨울이라 푸르고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자주 눈에 띄었기도 하고요. 평소에도 푸른 것들을 좋아하고, 늘 변함없이 푸르다는 뜻도 좋고, 녹색이라는 컬러 아이덴티티도 있고 또 묵직한 느낌이어서 마음에 듭니다.


―독립한 뒤 느끼는 가장 좋은 점, 어려운 점을 꼽는다면?

이전 직장이었던 '열린책들' 출판사는 디자이너의 역량을 많이 펼칠 수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독립이 가장 실감이 났을 때는 회사에는 전부 갖춰져 있던 업무 환경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 손님들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모습을 갖추기까지 시간을 꽤 들였던 것 같아요.(웃음)

―해오신 작품들로 수상을 여러 번 하셨어요. 처음 수상 소식을 알았을 당시가 기억나시나요?

네, 그럼요. 선명하게 기억나요. 이전에도 여러 번 출품했었는데 계속 낙방하다가 전화로 처음 그 소식을 듣게 되었었는데, 너무 기쁘고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지은님처럼 독립을 꿈꾸는 분들께 한 가지만 조언한다면?

저도 사실 누군가에게 조언드리기 보다 받아야 하는 입장인 것 같지만,(웃음) 아까 드린 답변과 비슷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시대에는 살짝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을 수 있지만,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한 우물 파듯 10년은 일해 보자, 라는 말이요.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었거든요.

선명한 대비의 힘



―'상록’의 이름으로 디자인한 첫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독립하고 처음 작업했던 책은 『진심의 바깥』이라는 시집인데요. 기존의 시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책입니다. 다른 시집에 비해서 이렇게 굉장히 긴 판형을 갖고 있고, 배색이 강한 띠지를 두르고 있어요. 과감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였는데, 많은 분들이 이 쨍한 대비감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띠지를 벗겼을 때 앞표지에도 제목을 따로 쓰지 않고 꽃 모양을 형상화한 그래픽만 배치를 해서, 시집 자체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별색도 자주 사용하시는지?

별색을 적절히 사용하면 완성도 자체가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선명한 발색을 기대할 수 있어서 자주 적용하고 있어요. CJ 하우저 작가의 『두루미 아내』라는 에세이 작업에서도 파란색을 별색으로 진행했었죠.

―탈네모틀 서체가 적용된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사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탈네모틀 서체는 글립 사이사이의 공간들이 주는 느낌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이 자전적인 내용의 에세이라는 형식과 어울려 고르게 되었고, 또 가운데 두루미 일러스트와 형태적으로 묘하게 비슷한 느낌도 들지 않나요?(웃음)



―두 인쇄지도 흥미로워요. 표지 전체를 한 번에 보는 용도인가요?

최종 데이터를 보낸 뒤 인쇄 진행을 할 때,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같이 인쇄소에 가서 화면에서 설정한 색깔이나 농도가 비슷하게 나오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는 감리라는 과정이 있는데요. 그때 이런 형태로 후가공과 재단이 아직 되지 않은 인쇄지를 볼 수 있습니다. 『두루미 아내』의 타이틀 부분은 후가공 처리를 했기 때문에 인쇄지상에 해당 부분이 비어 있는 걸 보실 수 있죠. 제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화면이랑 실제 구현되는 것의 간극을 잘 계산하는 것이 참 어려웠던 것 같은데요, 감리 중 생각했던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현장의 기장님께 색감 조정 등을 요청을 드리기도 합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면 인쇄를 멈추는 대형 사고가 있을 수도 있긴 한데요. 지금은 제가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 가능한 한 최대한 검수를 꼼꼼히 해서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인쇄기를 멈추는 일은 없었으면 하겠습니다.(웃음)

―대비감이 있는 색상 배합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색감에 대한 레퍼런스를 얻으시는 곳이 있을까요?

참고하는 사이트가 있거나 하진 않지만, 인쇄물뿐 아니라 가구나 회화 등 다른 분야의 예술 작품들에서 다양하게 아이디어를 얻으려 하는 편입니다.

―컬러에 공을 많이 들인 또 다른 작업이 있다면?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20권의 원고로부터 착안한 색상을 각 표지에 다채롭게 풀어낸 작업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의 표지에는 강한 오렌지색을 사용하거나, 「푸른 십자가」라는 책 표지에는 십자가의 형상이 직관적으로 푸르게 보이도록 그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목에서 뽑아낸 것도 있고,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재미있게 느껴질 법한 배색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책 표지가 코팅되어 있지 않거나 제목이 쓰여 있지 않다는 점이 이 시리즈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고전문학이 많은 독자분들께 좀 쉽게, 가볍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컨셉으로 만든 시리즈이다 보니, 여러 보강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책 표지에 별도의 코팅을 하지 않은 건, 이 시리즈를 세트 박스 안에 넣어서만 판매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또 말씀 주신 것처럼 제목은 책 등에만 쓰여있고, 표지에 저자의 이름과 각 작품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그래픽만 들어가 있는 지점 또한 책을 매대에 펼쳐두는 게 아니라 책 등만 보이게끔 박스에 꽂은 채로 출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이었습니다. 책을 꺼내 들기 전에, 책 등을 가장 먼저 보게 보니까요. 어떤 모습으로 독자분들께 선보여질지에 따라서도 정보들을 어디에 배치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에 항상 과감히 도전하시는 것 같아요. 만약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다면, 설득하는 편이신가요?

사실은 아까 앞서 질문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오히려 디자이너 입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찾아서 제안해야 하는 환경에서 근무해 왔거든요. 그중 흔하지 않은 케이스가 하나 있었다면, 35주년 에디션의 표지가 굉장히 간결하게 나왔기 때문에, 안쪽 날개와 뒤표지에 광고 문구나 시리즈 설명을 길게 넣기 보다는 각 책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장 한 줄만 뽑아 새기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작업하는 내내 했었는데요. 전체 펼침면을 만들어 보여드리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지 제안했던 특별한 상황이 있었어요. 보통은 마케팅을 위한 요소들이 뒤표지나 날개를 채우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때는 다행히 모두 심플한 방향을 좋아해 주셔서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평소 ‘과감한 디자인을 한다'는 평을 많이 받으시는데, 출시 후 가장 반응을 예측할 수 없었던 작업은?

그 부분에 대해선 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이라는 작업을 좀 소개를 해드리고 싶어요. 표지에 폰트 말고는 다른 것들은 다 배제를 한 디자인이거든요. 대신 뒤쪽에 이 작품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사진을 사용했어요. 예를 들어 「조지 오웰 산문선」에서는 「코끼리를 쏘다」라는 단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코끼리를 모노톤으로 보정해서 넣는 식으로요. 사실 이런 심플한 디자인 기획에 대해서 그때는 반응을 예측하기가 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정말 서체 외에 아무것도 없이 표지가 완성되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고민들도 되게 많이 했었고요. 그렇다 보니 종이의 질감이라거나 글자 하나하나를 매만지는 디테일 등에 더 신경을 많이 썼던 작업이었습니다.

―두 문학 시리즈 중 좀 더 마음에 드는 작업을 고르신다면?

두 시리즈 모두 사랑도 많이 받았었는데요. 고르기가 참 힘든데······.(웃음) 둘 중에 굳이 뽑자면, 35주년 에디션 작업에 좋은 반응이 있었기에 모노 에디션을 후속으로 자신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성의 디자인
― 북디자인에 대하여


―분야에 대해 좀 더 딥하게 이야기 나눠 볼게요.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북디자인 분야가 매력적인 점은 무엇일까요?

종이라는 물성이나 쓰인 활자, 잉크 냄새 등 작업물을 실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책 자체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요.(웃음)

―북디자인의 세부적인 작업 단계가 궁금합니다.

우선 작업은 원고를 읽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데요, 첫 번째로 그 안에서 키워드를 뽑아내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를 시각화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찾아내려고 해요. 그것을 통해서 어떤 컨셉을 도출하고, 그 컨셉을 통해서 무드보드를 만들어요. 컬러나, 기조라든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정한 다음에 이를 표현할 방식을 고민합니다. 앞서 보여드렸던 작업들처럼 그래픽이나 타이포그래피로 작업할 수도 있고, 사진을 활용할 수도 있고, 드로잉을 넣을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조금 큰 카테고리로 나눠 본 후에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는 것 같아요.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으신 편이시군요.

네. 항상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시는 단계는 무엇인가요?

사실 원고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가장 긴 시간이 걸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섬세한 감각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보다, 스토리를 파악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이야기의 결을 짚어내어 아이데이션 스케치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편입니다.

―작업 중 어떤 순간에 쾌감과 원동력을 느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원고를 읽는 과정 자체에서부터 큰 재미와 쾌감을 느껴요. 원동력을 얻을 때는 아무래도 결과물이 잘 나왔을 때인 것 같은데요.(웃음) 그보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시안을 좋아해 주실 때, 그때가 제일 좋은 것 같고. 또 독자분들께서 디자인 때문에 샀다는 이야기를 가끔 해 주시는데 그럴 때 정말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해요.

―좋은 작업에 속도감을 내기 위해 평소에 꾸준히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좋은 것을 보는 눈’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손, 이런 것도 되게 중요하지만 그걸 잘 가려내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구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을 캔버스로
대하는 방식

―회화와 디자인을 모두 전공하셨어요. 북디자인에 있어서 두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주 전공이 회화인데 처음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을 때,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분야일 것 같다, 그래서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일을 할수록 북디자인이라는 영역 안에서 두 분야가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껴요. 특히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데, 책 표지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었거든요. 그렇게 작업한 경험들이 두 분야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리게 한 것 같습니다.

―작품을 풀어내는 지면이라는 점에서 책 표지도 하나의 캔버스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지은님의 그런 회화적 인사이트가 가장 크게 드러난 작업이라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기획된 방향을 고려했을 때, 볼라뇨 20주기 특별 합본판인 『2666』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실물을 처음 봤을 때, 중압감에 입을 떡 벌리고 본 기억이 납니다.(웃음) 작업기가 궁금해요.

본래 다섯 권으로 출간이 됐던 책을 한 권으로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사이즈가 거대해지기도 했고, 첫 기획 단계부터 위압감을 줄 수 있도록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볼라뇨를 사랑하는 독자분들께 멋지고 방대한 느낌을 선사해 드리고 싶었어요. 타이틀 서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은데, 간결하게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는 제목이어서 여러 가지 서체를 시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유려하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의 Didot 서체가 클래식한 작품의 느낌과 굉장히 잘 어울려서 결정하게 되었죠. 일러스트 같은 경우에도 지옥도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였으면 해서 직접 펜으로 그렸거든요. 테두리 부분만 은색으로 빛날 수 있도록 후가공 처리를 하고, 종이도 중후한 가죽의 느낌이 나는 것으로 고르고······. 압도감을 거듭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순수 예술을 전공하신 것이 이런 부분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네. 사실 『2666』의 표지 일러스트도 처음에는 컴퓨터 툴을 이용해서 벡터로 단순하게 그렸어요. 결과물을 보니 원고의 성격 그 이상으로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이 있었고, 회화적인 요소를 넣어 무게감을 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작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판형이 특별한 만큼 내지 디자인도 기존과는 달랐을 것 같아요.

책을 읽을 때 시선은 문장의 첫 부분에서 끝부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잖아요. 이 과정이 피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야지 독서를 편하게 할 수 있거든요. 이 책의 판형이 워낙에 크니, 가장 적절한 길이로 행장을 조절하는 것이 본문 작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서체도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사용했고요.

―드로잉 외 다른 매체를 사용한 작업도 있나요?

여러가지 방식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중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라는, 미야케 리이치라는 작가가 쓴 평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작업했거든요.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안도 다다오 건축가가 녹색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녹지에 대한 철학이 있다거나 어릴 적 녹색에 대한 추억도 나와 있고요. 그런 점들에서 그린 컬러에 착안해 표지에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제목이 돋보일 수 있도록 작업했죠. 뒤표지의 사진은 처음 건축사 사무실을 만들었을 때 안도 다다오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의 눈빛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처음에 이 사진을 앞표지에 써야 할까 하는 고민도 거쳤었어요. 결국 뒷면을 온전히 활용하여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앞뒷면이 온전히 다른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뒤표지를 작업하실 때는 바코드 같은 부분을 어떻게 배치하실지도 고민이 되실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바코드의 형태도 사실은 항상 특별함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또 컨셉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작업하려 하고요.

HOW TO USE
FONTS

―서체를 고르는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서체를 픽스하게 되나요?

본문 서체의 경우에는 원고를 읽은 뒤 가장 먼저 정하는 편입니다. 본문의 서체를 정해 두어야 조판을 진행하고 수정하는 그다음의 과정들이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표지에 들어가는 타이틀 서체는 아무래도 본문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셀렉하는데, 원고의 성격을 잘 대표할 수 있는가를 가장 우선시하며 고르는 것 같습니다.

―북디자인에서 좋은 서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서의 색채가 강하다든지, 오히려 장르에 잘 구애받지 않는 서체라든지 하는 예시들이 떠오르는데요.

본문 서체는 사실 잘 읽히는 게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입니다. 아무래도 긴 글을,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어야 하니까요. 본문 서체와 관련해서 ‘글자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서체다.’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숨 쉬고 있을 때 공기를 인지하지 않는 것처럼 활자를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혹은 익숙하게 독자분들께 읽힐 수 있는지가 좋은 본문 서체의 가장 첫 번째 기준인 것 같습니다. 타이틀 서체의 경우에도 말씀드렸듯이 책의 정서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좋은 서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목용, 본문용 서체 조합을 추천해 주신다면? 섞어짜기 실패 없는 국문, 라틴의 필승 조합?

북디자인에서는 전통적인 명조나 Sandoll 고딕Neo1 같은 클래식한 고딕 계열을 많이 찾게 됩니다. 음, 조합이라면 기본 명조에 Times나 Garamond를 같이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섞어짜기를 계속하는 편이에요. 익숙한 게 가장 보기 편하니까요. 최근에는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정체를 써보기도 했어요. 정체 같은 경우에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아서 혼용 없이 그대로 써도 굉장히 좋다고 느꼈는데, Courier 같은 타자기 느낌의 영문 서체의 숫자나 영문 부분을 섞어짜기 했을 때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또 서체에 신경을 많이 쓴 작업이 있다면?

서체를 강조한 작업 중 하나로 앤서니 호로위츠라는 추리 소설 작가의 『중요한 건 살인』, 『숨겨진 건 죽음』 시리즈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제목용 서체들을 선택하여 작업했습니다. 『중요한 건 살인』에는 파셜산스를 사용했는데, 특별했던 지점이라면 보시는 것처럼 표지가 빈티지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서체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빈티지한 느낌 위에 잘 붙을 수 있도록 워싱을 하는 등 질감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파셜산스와 같은 무료폰트들을 사용하시는 경우도 많으신가요?

무료폰트 중에도 개성 있는 좋은 폰트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거나 이런 식으로 가공을 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무료폰트가 있다면?

프리텐다드도 많이 쓰고 있는데요. 기존에는 대부분 윤고딕을 사용했었다면, 프리텐다드 또한 무료폰트임에도 디테일이 남다른 폰트라고 생각해서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서체 스타일도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도 장식이 좀 많지 않은 서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담백한 느낌의 서체들을 워낙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때로는 화려한 느낌보다 그러한 서체들이 외려 여러 가지 목소리를 풍부하게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종이책의 존속과
오브제

―항간에 종이책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말이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신 적이 있으신지,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항상 책을 만들면서 출판계에 있다 보면 매일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또 그럴수록 더 북디자인이 중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요. 예뻐서 갖고 싶고, 그냥 사진 찍고 싶고······. 인스타그래머블 했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자주 썼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던 것 같아요. 책을 구입해서 곁에 두다 보면 또 자연스레 읽게 되잖아요. 그런 책을 제가 많이 만든다면, 북디자이너로서 뭔가 책과 독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종이책 시장에 어떤 수요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지은님께서는 책을 읽을거리 그 이상의 오브제로서도 여기시는 걸까요?

그렇죠. 북디자이너 자체가 책에 오브제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직업이다 보니 더 그렇기도 한데, 사실 책이란 것이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유튜브나 챗GPT로만 검색해도 정보는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책이라는 것의 역할이 현재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또 달라져야 하지 않나.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넘어서서 소장하고 싶고 오래 보고 싶은 물건, 그런 역할로도 존재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브제적 성격이 강조된 작품성과 판매를 이끄는 상품성, 두 성질 사이에서 밸런스를 지키는 과정이 필요하셨겠어요. 지은님 나름의 밸런싱 방식이 있으시다면요?

네, 맞아요. 그게 참 어려운 부분인데요. 순수 미술과는 또 다른 디자인 분야의 특징이 판매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제품이니까요. 근데 여기서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재미있는 지점이, 책을 하나의 작품처럼 대할수록, 또 그런 의도가 잘 보일수록 독자분들께서 더 구매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니 이후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유념을 하면서 작업을 하게 되고요. 상품보다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무게를 두면서 작업하는 것이 독자분들의 마음에도 좀 더 잘 가닿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상록

―지은님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매번 새로운 스타일 중 추구하는 방향은?

사실 전 작업을 할 때 특정한 스타일을 갖고 싶지 않다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책은 묵직하고 클래식한 느낌이어서 좋을 수 있고, 어떤 책은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어울릴 수도 있으니까요. 각각의 장점들을 보려고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지니고 싶고요.

―최근에 보신 책 중 디자인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했던 것이 있다면?

독립을 하고 파리와 런던으로 여행을 다녀왔었거든요. 그때 이 책들을 잔뜩 데려오게 되었어요. 특히 좀 오래된 책들 중에서 멋진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벼룩시장이나 독립 서점 같은 곳에서 오래된 책들을 팔고 계시는데, 일러스트나 타이포그래피가 정말 아름답고 매력 있는 서적들이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서울국제도서관에 가서 워크룸 프레스의 <포에버리즘> 책이 너무 예뻐서 구매하기도 했었습니다.


―여행을 가시면 항상 서점 같은 곳을 꼭 들리시는 편이신가요?

원래도 책을 좋아하니 그렇기도 하고, 또 이제는 공부도 되는 것 같아 항상 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갈 때마다 잔뜩 사서 무겁게 들고 옵니다.(웃음)

―책 표지만 봐도 좋은 책인지, 내게 맞는 책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은 굉장히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내 눈에 띄는 책이 있다면, 또 겉모습만 봤을 때 좋아 보인다면 아무래도 나랑 좀 취향이 잘 맞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면서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저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책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독자분들께서 주목해 주시고 짚어 주시면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더 디자인해 보고 싶은 책 종류가 있다면?

근무했던 출판사가 문학을 위주로 했던 곳이라 문학 작업들이 많고, 또 제가 문학을 되게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에도 저는 다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일 욕심이 많은 편이거든요.(웃음) 다양한 일을 많이 하고 싶고, 어떤 작업이든 지금처럼 꾸준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곧 진행하실 행사에 대해 약간의 스포 부탁드립니다.

네. 4월 4일 금요일 오후 7시 반에 산돌에서 ‘11년 차 북디자이너의 작업과 삶’이라는 제목으로 토크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작업했던 책들을 실물로 직접 보여드리면서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해드리고, 디자이너 여러분들의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웃음)

함지은'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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