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the menu / 본문가기

[인터뷰] 준폰트와 함께 성장한 「캘리그라퍼」 시리즈

아티클 2024.06.18

 

Q. 반갑습니다! <준폰트> 브랜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글자 디자인을 하고 있는 <준폰트>입니다. 산돌구름에 입점한 지는 벌써 2년이 되어가네요. 지방에는 대기업이 없다 보니 주로 일은 수도권에서 받는 편입니다. 디자인업 특성상 장소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어 큰 불편함은 못 느끼고 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지역 내 기업들과도 자주 일해보고 싶어요. 몇 년 전 작업했던 향토기업 ‘학산’의 ‘비트로 코어체’가 유튜브 자막에서 자주 보여서 뿌듯하더라고요.

 


(출처: 위메프)

 

 

Q.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만큼 지역 기업들과 함께 하신 작업들이 기억에 남으실 것 같아요. 폰트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90년대에는 매킨토시가 정말 비쌌었어요. 고등학생 시절에 컴퓨터그래픽 수업에서 아이맥 G3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었어요. 작업이 끝나면 발표도 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봤었죠. 그래서인지 대학교에 올라가 접한 시각디자인 수업들에 대해서는 흥미가 많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2학년 때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었는데 적성에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각디자인의 기초이자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모든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콘텐츠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마치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랄까요. 졸업작품에서 폰트를 하나 제작했고 진로도 이쪽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폰트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길이 다양하지만, 그 당시는 방법도 모르고 제작 도구도 부족해서 막막한 상태에서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이 되네요. 폰트 디자인이 정말 적성에 맞으시는 것 같은 점이, 산돌구름에 입점하신 이후 2년 사이에 무려 9개의 신규 폰트를 출시하셨어요. 준폰트만의 빠른 제작 팁이 있을까요?


정작 회사 다닐 때는 폰트를 많이는 못 만들어 봤었어요. 그 대신에 비트맵, 모바일, 힌팅(화면용 글자), 한자, 다국어 작업을 다양하게 해봤죠. 회사를 그만두고 개발자분께 폰트 제작 방법까지 배우고 나니 이제는 폰트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폰트 기획, 제작, 생산까지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죠. 폰트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작업 시간의 단축은 저에게는 아주 중요했어요. 스크립트와 매크로를 활용하여 작업해 봤던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저에게 최적화된 작업 환경을 구축해 두었어요. 반복되는 작업이 나올 때 ‘어떻게 단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간단한 것은 스크립트로 만들어서 쓰기도 하고 키보드 단축키도 많이 활용합니다. 생각이 많은 유형이라 평소에 작업을 하면서도 다음 폰트에 대한 구상을 많이 해두는 편이에요. 시안 작업을 해두는 경우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만들 폰트를 10개 정도는 구상해 보고 우선순위에 따라 제작 순서를 바꾼다거나 하는 편입니다.

 

 

Q. 10개의 후보가 벌써 궁금해지는데요. 그러면 다음 작업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는 편이신가요?


우리나라는 유행 민감도와 타인 지향성이 높아요. 그래서인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 나도 편승하고 경험해 봐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죠. 디자인 트렌드를 가장 먼저 생산해서 보여주고 선도하는 시장은 제가 생각했을 때 K-POP이에요. 최근의 아이돌 그룹들은 브랜드처럼 별도의 로고가 존재하고, 앨범명과 곡 목록에는 각각의 곡들이 전하는 느낌대로 레터링을 각각 제작하거든요. 대형 기획사들 위주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흐름을 파악하려는 편이에요.

 

 

Q. 그럼 이제 폰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여쭤볼게요. 준폰트의 대표 폰트 중 하나인 「캘리그라퍼」 시리즈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경기도 포천시의 전용 서체인 「포천 막걸리체」를 만들면서 캘리그래피의 재미를 느꼈어요. 손글씨 특유의 질감이 있어 작업할 때 힘들었기는 하지만요. 다른 글자들과 비교하고 계산하면서 작업하지 않아도 되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업이었죠. 폰트는 서예나 손멋 글씨와는 달리 제약이 많아요. 크기와 위치가 비슷해야 하고 좌우에 어떤 글자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유동 범위 또한 제한적이죠. 「캘리그라퍼」 시리즈는 그런 한계를 기술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실험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포천 막걸리체」

 

 

 

Q. 최근 「캘리그라퍼 3」까지 출시하시면서 시리즈를 계속 확장해 나가고 계신데요. 「캘리그라퍼」 시리즈의 1, 2, 3 각 폰트의 특징이나 차별점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캘리그라퍼」 1에서는 단순히 오픈타입 기능을 이용해서 글자를 대체시키는 형태, 2에서는 배리어블 폰트(슬라이드 바를 움직여 변화를 줄 수 있는 기능)로 위치나 크기 길이를 변형할 수 있는 형태, 3에서는 기본 형태에서 좌우로 각도와 기울기를 변형하는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글자는 기울기가 한쪽 방향인데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게 해보자는 의미로 시도해보았어요. 전반적으로 큰 틀은 유사한 맥락으로 가면서 세부적인 특징에서 차별점을 두었어요. 1은 직선 형태로 반듯하게 쓴 느낌, 2는 곡선을 넣어 유려하게 표현, 3은 리본 형태로 꼬인 곡선을 적용했어요. 시리즈가 앞으로 어디까지 더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10탄까지 만들어보고 싶네요.

 

 

Q. 과연 몇 번째 시리즈까지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 중 「캘리그라퍼 3」는 배리어블까지 포함하여 총 16종의 대형 패밀리 폰트인데요. 두께, 기울기, 각도 3가지 축으로 구성된 점이 눈에 띄었어요. 배리어블 폰트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배리어블 폰트는 1개의 폰트 안에 여러 개의 폰트를 탑재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그런데 1개의 배리어블 폰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캘리그라퍼3 배리어블 안에는 총 24개의 폰트가 들어있는데 제가 여태껏 했던 작업 중에 가장 머리가 아프고 힘든 작업이었어요. 왜냐하면 하나의 문제가 발견되면 동시에 24개의 수정 사항이 생기는 것과 같은 셈이니까요. 2,350자를 기준으로 24개의 폰트는 총 56,400자가 됩니다. 폰트를 내보내는 과정에서도 호환성이 잘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작은 어렵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말 편리한 기능이고 많이 만들어지면 좋죠. 아직 많지 않은 이유는 인건비가 더 드는 데 반해 판매가격이 오히려 손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소비자에게 폰트 한 종 가격으로는 비싸게 받아들여질 수 있거든요.

 

 

 

Tip! 배리어블 폰트 활용 팁

배리어블 폰트는 CPU, GPU, 메모리 카드 성능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변경되는 좌표와 형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출력해 주다 보니 슬라이드 이동이 끊긴다거나 버벅댈 수 있어요. 글자 수가 적으면 문제가 없는데 많을수록 심해지죠. 고화질 모니터일수록 더 부각될 수 있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글자만 배리어블로 작업하시고요. 글자 수가 많다면 슬라이드를 드래그하지 말고 특정 구간을 한번 클릭해주거나 오른쪽 입력 창에 수치를 직접 입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Q. 가장 최근 출시된 신규폰트와 앞으로 출시 예정인 신규폰트도 살짝 맛보기로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피오피」

 

준폰트의 구독자 비중이 기업보다는 개인 사용자가 높은 편이어서 그분들께 필요한 폰트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규모로 업체를 운영하시거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딱 맞는 폰트를 생각하다가 「피오피」 폰트를 떠올렸어요. 피오피 글자들을 보면 보통 두께로 인해 겹치는 외곽선을 뚫어 만든 것들만 있어서 획을 겹쳐서 표현해 봤어요. 밋밋하게 직선으로 떨어지는 형태는 피했고, 구름 같은 글자를 찾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한 종은 구름 느낌으로 제작해 보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미출시)

 

현재 제작 중인 폰트는 지휘자의 손동작을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라는 폰트입니다. 광고, 공연, 전시, 제품 포장 등 품격을 강조해야 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평소 디자이너 분들의 수요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편인데, 광고에 등장하는 꼬인 형태의 곡선이 많이 들어간 글자를 찾으시더라고요. 그런데 폰트는 레터링과 달리 많은 글자를 소화해야 할 때가 많아 특징이 과할수록 피로도를 유발하고 가독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거든요. 그런 점을 보완할 방법을 연구해서 출시할 예정이니, 「오케스트라」 지켜봐 주세요. 

 

 

 

Q. 제작 중이신 폰트까지 빨리 만나보고 싶네요! 그 외 산돌구름에 입점한 <준폰트>의 폰트 중 특별하게 추천하고 싶은 폰트가 있으신가요?

 


위: 「코발트블루」, 가운데: 「각진펜」, 아래: 「캘리그라퍼2」 (출처: JYP Entertainment) 

 

최근에 가수 스트레이키즈의 자체 콘텐츠에서 「각진펜」, 「코발트블루」, 「캘리그라퍼2」를 써주셨더라고요. 특징이 과하지 않아서 영상 자막용으로 쓰기 좋은 폰트들이에요. 웹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폰트를 수십 개 사용하는 곳도 보이는데 그러면 조금 정신 없고 통일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거든요. 가능하면 영상 자막에서도 최소한의 가짓수로 쓰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왼쪽: 「캘리그라퍼」 (출처: 모던하우스 인스타그램), 오른쪽: 「댄싱퀸」 (출처: 이글스TV 유튜브)

 

모던하우스 인스타그램에서는 감성적인 인테리어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캘리그라퍼 1」 을 써주셨고요. 썸네일 이미지, 강조,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댄싱퀸」 폰트를 추천해 드려요. 한화이글스 유튜브인 ‘이글스TV’에서 써주셔서 유명해졌어요.

 

 

 

Q. 준폰트와 함께한 첫 인터뷰라 질문이 많았는데요. 끝까지 정성 어린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산돌구름 사용자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처음 입점 당시 산돌구름 담당자 분으로부터 무료 이용권 체험 신청을 많이 해주셨다고 전해 들었어요. 한 분, 한 분 인사드릴 수는 없지만 보여주신 관심과 체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용해 주시는 모든 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기 위해 어떤 폰트를 만들까, 매번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폰트와 이용자 분들이 원하실 만한 폰트 사이에서 말이에요. 지금까지는 무난한 느낌의 글자를 늘려가는 방향이었다면 향후에는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적인 글자들도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