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산돌구름에서 폰트 회사가 아닌 다른 분야의 회사를 소개하는 건 처음인데요. 처음 만나는 산돌구름 유저들에게 '스튜디오좋'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좋같은 광고를 만드는 종합광고대행사 스튜디오좋입니다. 새로 소주의 '새로구미',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삼양라면 뮤지컬, 미원, 클레브 '불 좀 꺼줄래?' 등 콘텐츠 같은 광고, 광고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Q. 스튜디오좋의 작업을 보면 그래픽 디자인도 뛰어나시지만, 타이포그래피에 높은 애정을 가지고 만드신다는 인상이 들어요. 광고에서 타이포그래피나 폰트의 쓰임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송재원(이하 송): 광고의 핵심은 메시지잖아요. 메시지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같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메시지라도 성우의 좋은 목소리가 일반인의 목소리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처럼요. 타이포그래피와 폰트는 광고 카피를 읽어주는 성우와 같습니다. 그 브랜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톤으로, 멋지고 섹시하게 표현되어야 해요.
Q. 광고 카피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입히는 느낌이군요. 스튜디오좋은 폰트를 잘 쓰는 데 그치지 않고 폰트를 만들기까지 하셨어요. 폰트 제작 툴도 직접 배우셨다고 들었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까지 폰트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곽호석(이하 곽): 사실 스튜디오좋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가 폰트를 만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스튜디오좋의 강점이 바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잖아요. 그런 면에서 폰트를 제작하게 된 것도 '스좋'다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폰트 제작 툴을 처음부터 배우고 작업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스튜디오좋만의 독창성이 담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큰 동기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송: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만들어진 폰트는 브랜드에게 다양한 이득을 줍니다. 소비자에게는 일관된 이미지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디자인 과정의 프로세스를 단축해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폰트를 개발하기 위해 얼마의 비용이 든다고 계산하진 않습니다. 세계관을 만들고, 수년간 브랜드의 캠페인을 전담하면서, 브랜드 자산이 쌓일수록 브랜드가 단단해지는 것을 체감합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좋은 폰트뿐만 아니라 캐릭터, 그래픽, 슬로건 등등 폭넓은 브랜드의 자산을 만들고 있습니다.
Q. 광고 회사에서 만든 폰트라니, 센세이셔널한 첫인상이 기억나요. 그럼 제작하신 폰트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볼까요. 스튜디오좋에서 선보이는 두 폰트는 완전히 다른 인상과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공통점이라면 아주 구체적인 컨셉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일 것 같은데요. ‘이런 폰트를 만들어야겠다’라는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요. 두 폰트가 탄생하게 된 처음 시작이 궁금합니다.
송: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했습니다. (웃음) 폰트를 만든다는 건 분명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솔직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요.
「쿠로코체」는 '자소를 최소로 만들어도 기능하는 폰트'에서 출발했습니다. 발음의 종류가 가장 적은 언어 중 일본어를 골랐어요. 초기 계획에는 300여 자만 만들면 웬만한 일본어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포함되지 않은 자소들 때문에 타이핑할 때 폰트가 깨지는 문제점이 따라왔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쿠로코'라는 캐릭터를 비어있는 자소에 삽입했습니다. 에도 문자의 기원과 연결되는 요소이자, 동시에 적은 자소 수 때문에 발생하는 한계점을 컨셉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치였어요.
「일방통행체」는 '조합형인데 컨셉이 뾰족한 폰트'에서 출발했습니다. 글립스 프로그램을 처음 공부할 때 직선의 조합형이 기본기능을 연습하기 좋잖아요. 장체의 민부리 폰트는 이미 좋은 폰트들이 많아서, 차별화를 위해 더 구체적인 컨셉으로 노면 글자를 골랐습니다. 펀딩을 준비하면서, 텀블벅이라는 플랫폼에 맞게 웹툰 배경, 메타버스 배경 작업을 위한 목적을 강조하는 것으로 기획을 좁혔어요. 해당 목적을 위해 도로 기호까지 폰트 구성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Q. 「쿠로코체」는 일본의 전통적인 문자 스타일을 한글에 적용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작 과정에서 디자인적으로 신경 쓰셨던 지점이 있었을까요?
곽: 에도 문자 자체가 ‘공연에 관객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자이기에 굉장히 두껍고 겹쳐진 형태가 특징이에요. 한 글자 한 글자 시각적으로 강렬한 임팩트가 있지만 그런 특징이 그대로 폰트에 반영되기엔 가독성을 해치기 쉽죠. 에도 문자의 강렬함과 폰트로서의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특히 복잡한 글자의 경우, 획의 구조나 속공간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가독성이 크게 달라졌기에 수없이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쿠로코체」의 패밀리 구성도 특이한데요. 기존의 폰트들은 주로 굵기나 너비, 또는 스타일로 나누었다면 「쿠로코체」는 글자 수로 나누어져요. 글자 수를 나눈 기준도 427자, 1119자, 1912자로 기존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요. 보법이 다른 스튜디오좋의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구성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송: 2350자, 2780자가 업계 표준이긴 하지만, 그것이 폰트 개발의 핵심은 아닐 겁니다. 폰트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재료이고, 그 목적만 분명하다면 규칙은 따르지 않을 수 있죠.
「미원체」는 조미료라는 브랜드 특성에 맞춰 세상의 모든 요리 이름을 표기 가능해야 한다는 목표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뱡뱡몐, 더우푸좬, 카오나 뺃, 허이헷쏫' 같은 요리를 표기하기 위해 2780자에는 없는 글자들을 포함해 구성했습니다. 버거킹의 한글 폰트 「불맛체」에는 광고 및 디자인 제작물을 만들 때 사용성을 높여주는 기능들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스튜디오좋이 광고 회사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마케팅/브랜딩 활동과 기대효과까지 고려한 기획이 있어야 기성 폰트 회사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쿠로코체」는 일본 테마의 가상의 클라이언트가 있다고 상정했어요. 여기서 사용 목적별로 세분화해 3개의 뎁스를 만들었습니다.
① 427자는 99%의 일본어 발음 표기가 가능하고 일본향 콘텐츠를 만들 때 없으면 곤란한 자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가수 ‘아이묭’을 표기하기 위해서 ‘묭’을 추가하거나, 한본어로 유명한 유튜버 ‘쿠키커플’의 유행어 ‘쏯‘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여행 상품의 지명 표기, 위인전의 인명 표기, 일식집 간판 등에 유용합니다.
② 1119자는 한국 소재의 횟집이나 일식당 등에서 웬만한 한국어 메뉴판도 구성할 수 있는 자소 수입니다. 매운탕, 광어회, 생맥주 등을 표기할 수 있죠. 덕분에 기초적인 한국어 문장도 표현이 가능합니다.
③ 1912자는 일본 테마 유튜버들의 자막용 또는 ‘니지모리스튜디오’ 같은 한국에 위치한 일본 테마파크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앓던 이가 빠졌다’ ‘객실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됩니다’와 같은 겹받침과 과거형 표현도 가능합니다.
곽: 「쿠로코체」는 '한국말에 서툰 일본인'이라는 독특한 페르소나를 담고 있어요. 글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마치 쿠로코가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가다, 마침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과정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사용자 입장에서도 용도에 맞는 버전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어 실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일방통행체」는 실제 도로 위에 그려진 노면 글자들을 수집하며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 기호들도 폰트에 반영되었죠.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셨는지, 이 글자를 폰트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곽: 「일방통행체」의 모든 글자는 실제 표본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평상시 밖을 돌아다닐 때에도 못 보던 노면 글자를 발견하면 사진으로 남겨 표본을 수집하고, 필요한 글자가 있다면 그 글자가 포함된 지명의 로드맵을 뒤져서 노면표시를 찾아내는 등 로드맵으로 전국을 누볐습니다. 아마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이 없었다면 제작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방통행체를 제작하면서 수집한 노면 글자들
일방통행체의 모든 글자와 기호들은 실제 마킹 방식을 토대로 그려졌다.
로드뷰를 서칭하며 발견한 재미있던 것은 바로 같은 글자여도 연도나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노면 글자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기도 하고, 작업자의 습관과 숙련도에 따라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이럴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표본들을 수집하여 비교한 뒤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도출했습니다. 글자나 기호를 그릴 때에도 실제 마킹 방법과 순서를 그대로 적용해 모든 획이 분리된 형태로 그렸습니다. 물론 실제 폰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는 아니지만 나름 고증을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이랄까요.
일방통행체 펀딩 성공 기념사진 (좌: 송재원, 우: 곽호석)
Q. 「일방통행체」는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글자인 11,172자를 지원하는데요. 사실 도로 위에서 사용되는 글자라면 이보다 적은 스펙으로도 표현이 가능할 텐데, 외계어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 폰트가 다른 용도에서도 사용되기를 바라며 만드신 의도가 있었을까요?
송: 웹툰 작가, 메타버스 게임 개발사에서 폰트를 사용하는 것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도로 기호뿐만 아니라 현실에 없는 지명을 표기해야 하거나, 장면 연출상 외계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환각에 빠진 주인공 앞에 읽을 수 없는 노면 글자가 등장하는 것처럼요.
곽: 노면 글자는 도로 위에서 특정 기능을 위해 쓰이지만, 글자 자체가 가진 개성이 뚜렷해요.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으면서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특성상 기계적이면서도 사람의 터치가 담긴 독특한 형태가 매력적이잖아요. 폰트로 구현할 때도 두 가지 특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죠. 이런 글자가 도로가 아닌 다른 곳에 쓰이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노면 글자는 모임꼴별로 초성, 중성, 종성의 비율이 일정해서 새로운 글자를 파생시키는 작업도 비교적 수월했어요. 그래서 11,172자 전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도로를 넘어 다른 용도로도 재미있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송: 「일방통행체」는 직선형 대체 글리프나 유럽, 일본 등의 노면 글자를 포함해서 20,000자 이상을 목표로 합니다. 전세계의 모든 노면 그래픽을 하나의 폰트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Q. 앞으로도 스튜디오좋이 만드는 폰트들은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지 기대되는데요. 현재 제작 중인 폰트가 있다면 살짝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에도모지 시리즈의 두 번째 폰트인 스모체 427의 프로토타입이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스크립트 스타일의 한글 서체도 작업 중입니다!
Q.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좋'의 입점을 환영하는 산돌구름 사용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산돌구름에서 스튜디오좋의 폰트들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스튜디오좋만의 색깔을 담은 폰트를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세요!
「쿠로코체」 사용해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1개월 무료 체험해 보세요!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