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공병각 작가님. 반갑습니다! 산돌구름 유저들에게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20년차 캘리그라퍼 공병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익숙하실 만한 폰트 이름 '공병각체'의 공병각입니다.
Q. 먼저 작가님께서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손글씨는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재능인지, 아니면 원래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고, 광고 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알고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기술로도 제 능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할당된 어떤 광고 프로젝트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주어진 광고 카피를 기존에 있는 폰트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글씨를 아날로그로 써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밤새 전지에 글씨를 썼죠. 그때 처음으로 글씨를 쓰고, 스캔하고, 광고 이미지에 입혀보는 작업을 해봤던 건데 그게 우연히도 클라이언트의 채택을 받게 됐어요. 저도 모르게 손글씨에 입문을 하게 된 거죠. 그 이후로 캘리그라피라는 작업이 사람들한테 어필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가 되겠다, 생각하고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Q. 우연한 기회로 캘리그라피에 입문하게 되셨던 것이었군요. 글씨를 더 잘 쓰기 위한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셨다면요?
사실 처음에는 어떤 글씨가 잘 쓴 글씨인지, 예쁜 글씨인지에 대한 기준도 없었어요. 광고 회사에서 일을 받아서 했던 당시에는 광고 카피에 맞춰서 조금 더 강렬하게 표현하거나, 감성적으로 표현하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했었죠. 그 표현을 위해서 글씨와 어울리는 도구를 선택하기 시작했어요. 강렬한 문구에는 콩테나 목탄처럼 거친 도구를, 감성적인 문구에는 부드럽고 물기 있는 도구를 선택해서 그 텍스처에 맞는 글씨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감사하게도 영화, TV CF, 음반 타이틀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글씨를 쓸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고 그때마다 수없이 많은 글씨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실력도 같이 늘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신 ‘공병각체’의 필체도 3년 정도 연습을 거쳐서 완성된 필체예요.
Q. 말씀해 주신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가지만 고르라면 물론 첫 작품이겠죠. 처음 제가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글씨를 제일 못 썼던 시절의 작업이기도 했는데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바닥에 전지를 깔아놓고 도구도 색연필, 유성매직, 먹물 여러 가지로 바꿔가면서 무작정 시도했던 첫 작업. 그 작업이 스타벅스 광고였어요. 스타벅스에서 한국에 처음 런칭되는 캔커피 광고였는데 그때 쓴 손글씨 시안이 채택이 되면서 광고에 실리게 되었었던 작품이 제일 먼저 기억에 남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제가 지금까지 10권 정도의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직접 썼었던 글귀들이죠.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제가 어떤 글씨를 쓸 수 있고, 어떤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테스트하는 의미도 있었고요. 그리고 또 사람들에게 손글씨를 알려주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제가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때 연습하는 과정에서 썼던 수많은 글귀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은 작업도 있고 작가님께서 직접 문구를 쓰시는 작업도 있을 텐데요.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매일매일 의미 있는 글귀들을 포스팅하고 계시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손글씨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나, 담고 싶은 의미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어느 순간 지치고, 정체되는 시기도 있었어요. 어떨 때는 저답지 않은 글씨를 써야 할 때도 있었고요. 그럴 때는 제가 글씨를 쓰면 쓸수록 어둡고, 슬프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저한테도 그 영향을 미치는데, 이 글씨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심했을 때 사람들이 다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었잖아요. 저도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유롭고 즐거운 표현을 하고 싶은데 주변은 그렇지 않았죠. 그런 시기를 겪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글들을 쓰고 싶어졌어요. SNS에 밝은 글을 포스팅 하기 시작하니까 보시는 분들도 훨씬 많이 좋아해주시고, 저도 덩달아 응원을 받게 됐어요. 이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들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프로필 사진으로 써도 될까요?’ ‘가져가서 공유해도 될까요?’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저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됐고, 그렇게 매일 포스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글들을 많이 쓰고 있어요.
Q. 산돌과 함께 협업한 「Sandoll 공병각」 폰트 시리즈가 출시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요. 그때 당시 작업에 대해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손글씨 원도를 500자 정도 그리면, 산돌에서 나머지 글자들을 파생해서 폰트화 하는 작업으로 진행했었는데요. 500자를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 글자로 하나의 폰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글자 하나 하나에 특징을 실어야 하고, 일관적으로 써야 하잖아요. 처음에는 조금씩 쓰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흐름이 끊기면 안 되다 보니 500자 쓰는 작업을 100번 정도는 했던 것 같아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글자 간의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서 계속 쓰고, 버리고, 고르고 골라서 지금의 폰트에 담긴 글자들이 나오게 된 거죠. 산돌에서도 폰트화 하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여주셨고, 그때 만든 공병각 폰트가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그때 당시에는 캘리그라피 폰트가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어떤 용도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을까요?
저도 그때는 처음 폰트를 만들다 보니 어디에 쓰였으면 좋겠다, 라기보다는 제 글씨로 한 단계 졸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어요. 손글씨로 폰트를 만들면 하나의 완성품이자 기성품이 되어버리는 느낌이잖아요. 제가 직접 쓰는 글씨와,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고 각자 작업할 수 있는 폰트가 되어버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그래서 특별히 어떤 용도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보다는, 그저 많은 분들이 제 글씨체의 폰트를 선택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저도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폰트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어떤 결과물이든 디자이너들이 많이 골라서 사용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었죠. 마치 오디션에 뽑히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처럼요.
Q. 작가님의 바람대로 어떤 용도든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이는 스테디셀러 폰트가 되었네요. 이번에는 작가님의 또 다른 필체를 2025년에 새로운 폰트로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공병각 폰트들을 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폰트를 만든다는 건 제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잘하던 것을 계속 잘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전에 산돌과 협업해서 나온 글씨를 저도 10년 넘게 시장에서 보다 보니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가진 이런 필체도 있고, 저런 필체도 있는데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도 들었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폰트를 제작하는 법을 직접 독학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Q. 손글씨의 특성상 디지털 폰트로 변환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직접 배우고, 완성하게 되셨는지 그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폰트를 작업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몸소 깨닫게 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예전처럼 원도 500자만 쓰는 게 아니라, 한글로 10,000자가 넘는 글자를 다 써야 했죠. ㄱ부터 ㅎ까지 자음과 모음, 그리고 라틴까지 모든 글자를 다 썼어요. 글씨를 쓰고, 스캔하고, 복사해서 붙여넣고. 폰트를 제작하는 방법은 유튜브나 학습서를 참고해서 한땀한땀 따라하면서 배웠어요. 일단 첫 번째 작업부터 완성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지만 결국에는 완성이 되더라고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익숙해져서 매달 폰트를 하나씩 만들어봤어요. 글씨를 쓰고, 테스트 해보고, 실제 완성된 폰트로 써보면서 제가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처럼 새로운 자극이 생겨난 것이 행복했어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다른 폰트 제작자들과 제가 차별화 될 수 있는 부분은 역시 손글씨이기 때문에, 폰트 작업이 익숙해진 뒤로는 글씨를 쓰는 데 더 집중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글씨도 써보고, 도구를 바꿔가면서 스타일도 바꿔보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시도해봤고 아직 작업중인 원도가 4-5가지 정도 쌓여 있어요. 여러 가지 감정선을 표현할 수 있는 글씨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Q. 작가님께서 경험하신 캘리그라피와 폰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날로그하게 글씨를 쓴 것과, 이 글씨를 디지털화 한 것의 차이는 되게 단순해요. 캘리그라피는 글씨 크기나 배치 같은 요소들을 즉흥적으로, 변칙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요. 폰트는 의도적으로 변형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정돈된 틀 안에서 쭉 이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변칙과 정돈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손글씨로 만드는 폰트들에는 아날로그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느낌을 조금 더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좋'의 입점을 환영하는 산돌구름 사용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산돌구름에서 스튜디오좋의 폰트들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스튜디오좋만의 색깔을 담은 폰트를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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