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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유의 폰트 스토리

노은유

Part0. 디자이너 소개

Q. 안녕하세요. 노은유 디자이너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폰트 디자이너 노은유입니다. 폰트 디자인 스튜디오 ‘노타입(NohType)’을 운영하고,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Q. 폰트를 디자인하는 것부터, 폰트 교육까지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신데요. 혹시 처음 폰트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타이포그래피’라는 생소한 이름의 수업을 들으면서 글자를 세밀하고 진중하게 만지는 작업에 재미를 느꼈고, ‘한글꼴연구회’라는 다소 학구적인 이름의 소모임에 가입하게 되면서 점점 폰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한글꼴연구회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내에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소모임입니다. 학생들끼리 모여서 글꼴에 대해 공부를 하고, 폰토그라퍼를 이용해서 폰트를 만들고 결과물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학교에 있는 비슷한 타이포그래피 관련 소모임과 교류하기도 했고요. 제가 가입을 했을 때는 마침 10주년을 맞이한 터라 역대 선배님들과 함께 모여서 전시를 했어요. 그때 이용제, 류양희, 박우혁 등의 선배님들을 처음 뵐 수 있었지요. 류양희 선생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ㅎㅎ

Q. 혹시 노타입을 소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다듬고 정성을 담아 ‘반짝반짝하고 윤이 나는’ 폰트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Q. [밸런스 게임] 평생 내가 만든 폰트만 쓰기 VS 평생 남이 만든 폰트만 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첫 번째를 택할게요. 제가 만든 폰트만 쓰게 되면 더 열심히 만들 것 같아요.

Part1. 「옵티크」 폰트 소개

Q. 「옵티크」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네덜란드 유학 시절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의 졸업 작품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졸업 필수 요건은 ‘라틴’ 폰트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요. 저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 ‘한글’ 폰트도 함께 제작했습니다. 원래 유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제가 만든 한글 폰트에 어울리는 라틴 폰트를 잘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옵티크Display」

Q. 졸업 작품 프로젝트로 「옵티크」가 시작되었군요. 왜 폰트 이름을 「옵티크」라고 지으셨나요?

「옵티크 (Optique)」는 프랑스어로 ‘시각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옵티크」의 글자가족이 시각적 크기에 따라 ‘Display(제목용)’과 ‘Text(본문용)’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한글 폰트는 대체로 굵기가 다양한 글자가족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의 글자가족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옵티크」를 만들기 전에 ‘폴 반더란(Paul van der Laan)’*의 수업에서 「캐슬론(Caslon)」 활자를 복각(Revival)하는 과제를 했었는데요. 캐슬론 활자 견본집을 보니 같은 「캐슬론」이라고 해도 사용하는 포인트에 따라서 알파벳의 형태가 다르더라고요. 요즘 폰트처럼 사이즈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각 포인트에 맞는 디자인을 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미 라틴 폰트 업계에서는 이미 매튜 카터의 「밀러(Miller)」, 「싯카(sitka)」 같은 폰트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한글도 이러한 크기에 따른 글자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스케치한 것이 「옵티크」 글자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만들어질 「옵티크 Text」가 나와야 비소로 완성이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옵티크 Text」는 열심히 만드는 중이니 내년 업데이트를 기대해 주세요.
* ‘폴 반더란(Paul van der Laan)’은 「IBM 플렉스」를 디자인한 분입니다.

William Caslon I’s 1734 Specimen Sheet

위에서부터 「옵티크 Display Bold」, 「옵티크 Display Regular」, 「옵티크 Text」

「옵티크」 글자가족 & 심볼

Q. 배경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옵티크」의 특징은 무엇이 있나요?

「옵티크」의 라틴 폰트는 ‘브로드닙(broad nib)’, 즉 넓적 펜을 바탕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한글 또한 같은 쓰기 도구인 ‘펜’을 사용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구라서 그런지 펜으로 멋진 한글 형태를 그리기 어려웠어요. 대신 우리의 옛 쓰기 도구였던 ‘붓’을 사용했습니다. 대신 예스럽지 않게, 붓을 바탕으로 한 형태를 날카롭고 우아하게 풀어내 보고 싶었습니다.

「옵티크」 라틴 알파벳 브로드닙 스케치

「옵티크」 라틴 알파벳 & 한글 스케치

「옵티크」 라틴 알파벳 스케치 과정

Q. 디자인 하면서 제일 고민 했던(제일 신경쓰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글과 라틴 알파벳의 조화입니다. 두 문자 중 어느 하나에 포커스를 해서 다른 문자가 희생되지 않고, 각각 아름답게 나오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따옴표, 마침표, 쉼표와 같은 문장 부호는 한글에 맞추면 라틴에서 작아 보이고, 라틴에 맞추면 한글에서 커 보이고 위치도 어색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픈 타입 기능을 이용해서 언어에 따라 알맞은 문장 부호가 나오도록 설정했습니다.

「옵티크」 언어별 문장부호

Q. 「옵티크」는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요?

현재 출시된 「옵티크」는 ‘디스플레이(Display)’버전인데요. 아직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는 제목으로 크게 쓰는 용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넉넉한 크기로 사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금박, 청박, 먹박 같은 후가공 인쇄를 이용해서 제품을 제작해 보니 아주 잘 어울리더라고요.

「옵티크」 Font in Use

Q. 그 외에 소개하고 싶은 폰트도 소개해주세요.

「기후위기-한글」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만든 멋진 폰트예요.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표현해서 독특한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료 폰트이니 지금 바로 다운로드해 보세요. 구름다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한글」

「소리체」는 기하학적인 표정의 본문용 폰트입니다. 외국어 소리를 표기하기 위한 멀티 글리프가 숨어 있어요. 그 외에 모던한 분위기를 내기 위한 어떤 디자인에도 잘 어울리는 폰트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소리체」

Part2. 디자이너 생각

Q. 좋은 폰트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는 잘 다듬어져서 완성도가 좋아야겠지만 이건 폰트의 기본 조건이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폰트는 그에 어울리는 적합한 용도로 잘 쓰였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폰트는 아주 좋은 폰트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사용하면 좋아 보이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최정호가 만든 SM서체의 복제 버전이었던 ‘애플고딕’은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 출시되었을 때 기본 폰트로 쓰였는데요. 당시 아이폰 화면에서 가독성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멋진 폰트라고 하더라도 과거 종이 인쇄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스크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좋은 폰트’는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넘어 사용자가 적합한 곳에 사용해 주었을 때 완성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폰트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동료,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무엇이 있나요?

폰트를 만드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저는 누구에게 조언을 하기보다는 동료, 후배 디자이너들과 함께 폰트 이야기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해외 폰트 디자인 업계와 학계를 경험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서로 정보 교류가 활발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산돌X글립스 워크샵 2022, AGTC 2022 컨퍼런스가 열렸을 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교류의 장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았고요. 저는 MBTI가 I로 시작하는 사람이라서 말을 먼저 건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으니 다들 말 걸어주세요! :D

Q. 폰트 디자이너로서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폰트를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제 직업을 ‘폰트 디자이너’ 또는 ‘한글 디자이너’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분이 많았거든요. ‘폰트는 원래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거 아니야?’ ‘한글은 이미 세종대왕이 만드신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에 비하면 요즘은 사람들의 폰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바라는 것은 그래픽 디자이너들, 즉 폰트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주체들과 더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굉장히 가까운 업계에 있고, 서로 관심은 많은데 생각보다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무언가 속에 담고 있는 폰트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친구가 아니면 쉽게 듣기가 힘들더라고요.

Q. 앞으로의 폰트 제작 계획을 들려주세요.

제가 그동안 함민주 디자이너와 함께 ‘글립스 타입 디자인’ 책도 출판하고, 강의와 토크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어요. 당분간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폰트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내년에는 「옵티크」의 본문용 버전인 「옵티크 Text」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옵티크」의 또 다른 글자가족을 늘려갈 수도 있고요. 얼마 전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위해서 옵티크를 조금 수정해서 로고타입을 만들었는데 그 버전을 폰트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기도 했거든요. 장기 목표는 책을 쓰거나 연구하는 일을 지속하면서 새로운 폰트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tvN 《작은 아씨들》 로고타입

Part3. 산돌구름 입점

Q. 산돌구름을 선택한 이유와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유통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어요. 어느 날 제 친구 디자이너가 사내에서 ‘산돌구름’의 폰트를 쓰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 말해줘서 꼭 함께 하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노타입의 입점을 환영하는 고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느린 속도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폰트을 열심히 만들어서 또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