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짧게, 명확하게
최근 몇 년 사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영상은 짧고 밀도 있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롭게 감상하기보다는 핵심만 빠르게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1.25배속과 2배속 재생이 흔해졌고, 전체 영상 대신 요약본이나 하이라이트만 찾아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시성비(視性比)’입니다. 시간 대비 시각적 효율을 뜻하는 이 개념은 콘텐츠의 길이뿐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텍스트의 역할도 달라졌고, 영상 안에서 자막은 이제 단순한 부연 설명이 아니라 콘텐츠의 분위기와 맥락을 좌우하는 핵심 시각 언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좁은 화면에 그렇지 못한 텍스트
이 서체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자막에 더 잘 어울리는 서체를 만들어보자는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숏폼 콘텐츠가 중심이 된 영상·광고 실무에서는, 작은 화면 안에 많은 정보를 넣어야 하는 일이 잦고, 그럴수록 자막이 명확하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특히 세로형 영상이 많아지면서, 같은 문장을 좁은 폭 안에 담아야 하는 상황도 늘었고요. 그래서 Compressed나 Condensed처럼 공간 활용에 효율적인 서체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높아졌습니다.
2023년 말 인크로스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숏폼 영상 플랫폼 이용률은 89.5%로, 2022년보다 8.4%p 증가했습니다. 또 와이즈앱의 조사에서는 국내 주요 OTT 플랫폼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이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 플랫폼의 1/5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제 영상 콘텐츠의 ‘기본값’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자막의 존재감도 그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이 서체는 그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실제로 자주 쓰일 수 있는 구조와 기능을 우선해 디자인되었습니다.
워키토키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워키토키는 다양한 영상 환경에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너비의 차이를 중심으로 구성된 4가지 스타일을 제공합니다. 가장 좁은 Compressed, 그보다 약간 여유 있는 Condensed, 표준 너비인 Normal, 그리고 가장 넓은 Extended까지, 콘텐츠의 성격이나 화면 비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Compressed 스타일은 세로형 영상 자막에서 특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같은 길이의 문장을 더 짧은 가로폭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줄바꿈 없이 한 줄에 넣을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Condensed는 그보다 조금 여유 있는 스타일로, 세로 영상이나 쇼츠 자막에 많이 쓰이는 구조입니다. 반면 Normal은 가로형 영상이나 SNS 카드 콘텐츠 등 보다 표준적인 비율의 환경에 적합하며, Extended는 강조가 필요한 짧은 카피나 키비주얼 타이틀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너비 차이가 충분해서 같은 문장이라도 스타일에 따라 분위기를 확실히 다르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워키토키는 Variable Font(가변 폰트)로 제작되어, 네 가지 스타일 사이의 너비값도 직접 조정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막의 길이나 화면 구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직접 폭을 세밀하게 조절해 텍스트를 최적화할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하나의 파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어 실무에서도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각 웨이트별로 Round 스타일도 함께 제작되어, 좀 더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본 스타일이 구조적이고 단단한 느낌이라면, Round는 둥글고 부드러운 톤을 줄 수 있어 브랜드의 성격이나 콘텐츠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합을 통해 워키토키는 하나의 서체이지만 다양한 스타일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디자인 방향과 구조적 설계
자막은 영상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워키토키는 빠르게 읽히고 안정적으로 반복 사용 가능한 꽉 찬 네모꼴 구조를 가장 우선에 두고 디자인했습니다. 조형은 복잡한 개성보다는 단단하고 또렷한 인상을 중심에 두었고, 각 스타일 간 너비 차이는 단순히 늘이거나 줄이는 게 아니라, 글자의 균형과 수직 흐름이 무너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조정했습니다.
또한 스타일을 바꿔가며 쓸 때도 전체 패밀리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도록 자간과 리듬감을 조율해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실무에서 실제로 사용하실 때, 같은 텍스트라도 스타일만 바꿔서 분위기를 쉽게 조절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워키토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워키토키는 왜 워키토키예요?
‘워키토키(Walkie-Talkie)’라는 이름은 짧은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는 장치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자막처럼 즉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환경에서, 이 서체도 명확하게 말하는 텍스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워키토키가 배리어블 폰트로 제작되어 폭이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리의 파형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음성 대신 자막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에, 소리를 닮은 움직임을 가진 서체라는 점도 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응답하라, 2025년의 콘텐츠
워키토키는 영상 자막, 광고 타이틀, SNS 카드 등 다양한 화면에서 실제로 잘 작동하는 서체를 목표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소리를 끄고 영상을 보는 게 자연스러워진 지금, 자막은 말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가 되고 있고요.
실제로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숏폼 플랫폼 이용률은 89.5%로 1년 새 8% 넘게 늘었고, 미국의 다른 리서치에서는 영상 시청자의 절반이 항상 음소거 상태로 콘텐츠를 본다고 답했습니다. 자막이 있을 때 영상을 끝까지 본다는 응답도 80%에 달했습니다.
이런 환경에 맞춰, 워키토키는 지금의 콘텐츠 소비 흐름을 폰트로 정리해보고자 했던 시도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요.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시청 방식이 자연스럽게 담긴 폰트로, 많은 영상 안에서 가볍게, 자주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Editor
산돌 디자인스튜디오 정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