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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폰트를 유형과 무형으로 디자인 하기, 누타입

아티클 2025.03.26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산돌구름 유저들에게 『누타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누타입』은 세 명의 여성 타입 디자이너 김슬기, 김진희, 이수현으로 구성된 타입 파운드리입니다.

 

 

Q. 『누타입』의 로고와 이미지 곳곳에서 다람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라는 문구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맞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글 팬그램*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에서 따왔어요. 대단한 이유는 없고 "다람쥐? 귀엽다. 심볼로 쓰자!"라는 엄청 단순한 흐름으로 결정했습니다.

 

*팬그램: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사용해 만든 문장을 뜻한다. 한글에서는 모든 자음 또는 모음이 포함된 문장을 일반적으로 팬그램이라 부른다.

 

 

Q. 귀엽고 직관적인 로고가 단번에 기억에 남았어요. 『누타입』의 세 디자이너 분들께서 하나의 파운드리로 모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타입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연차, 성별, 환경 등 비슷한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분야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닮아 있었어요. 때문에 단순히 '세 명이서 힘을 합쳐 더 많은 폰트를 만든다'기보다, 그러한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해 『누타입』을 시작했습니다.

 

 

Q. 그렇다면 ‘누타입’이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저희의 고민은, 진입 장벽이 높다는 분야에 대한 인식­­—특히 한글 폰트—과, 폰트라는 디지털 상품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폰트뿐만 아니라 타입을 소재화하여 다양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들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새로운'을 뜻하는 접두사 'Nu'에 'Type'을 붙여 '누타입(Nutype)' 이란 이름이 되었습니다.

 

 

Q. 『누타입』이 시도하고자 하는 '새로움'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인가요?

저희는 타입을 다양한 매체와 엮어서 '폰트'라는 디지털 제품뿐만 아니라 주제에 적합한 유형의 제품을 만들고 주제에 따른 여러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 공개될 2집의 경우 '오브제 타입(Objet Type)'이란 주제로 도자 브랜드와 협업해서 도자 제품과 폰트를 만들고, 팝업 전시와 협업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러한 방식과 과정이 타입 디자인 분야 안에서 '새롭다'라고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결국 '타입 디자인-폰트'라는 고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타입이 가진 가능성을 더 넓게 보고자 하려는 의도입니다.

 

 

Q. [밸런스 게임] 평생 내가 만든 폰트만 쓰기 vs. 평생 남이 만든 폰트만 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원하는 폰트를 매번 직접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 괴롭지만…. 세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있으니, 전자를 택하겠습니다! 제가 못 만들면 둘 중 누군가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요. 호호.

 

 

Q. 세 분께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주제 기획부터 각자의 폰트를 제작하기까지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나요?

아직 두 개의 프로젝트밖에 진행해 보지 못해서 기획 방식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에게 잘 맞는 여러 방식을 탐구해 보고 있어요. 하지만 방식이 어찌 되었든 저희는 주제 기획부터 폰트 기획까지 아주 긴밀하게, 피곤할 정도로 소통합니다. 또 다른 나를 설득하는 아주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제작 단계에서는 기한만 정해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만듭니다. 마치 아래의 밈이 딱 누타입이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 같아요.

 

 

 

Q. 하나의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때 이 프로젝트의 구분 단위로 '집(輯)'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셨어요. 타입 디자인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 용어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문학이나 음악 분야에서는 작가나 아티스트의 작업을 '집'이라는 단위로 묶습니다. 일련의 주제를 정해서요. 저희도 세 명이 모였으니, 세 명 다 다른 소리를 하기보다, 폰트든 유형의 상품이든 하나의 주제를 통해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마치 '연작'처럼요.

 

 

Q. 그럼 『누타입』 1집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까요. 1집 ⟪유형과 무형⟫은 어떤 의도로 기획되었나요? 이를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누타입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보니 누타입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랐어요. 그간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폰트를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폰트들은 기존의 유형을 또 다른 유형으로 표현하는 편입니다. 과거의 자료에서 보여지는 유형을 재해석하거나, 도구의 특징을 차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서요. 저희는 이러한 방식에서 벗어나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음악, 춤, 미술)을 소재로 삼아 유형의 형태를 가지는 폰트로 풀어냈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새로운 시도와 이어지네요. 음악, 춤, 미술을 소재로 각각 폰트를 하나씩 제작하셨는데, 먼저 「NU 숲」은 어떤 음악을 표현한 폰트인가요?

「NU 숲」은 최유리의 '숲'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한 폰트입니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나무들 사이에서 한없이 작은 듯 느껴지는 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어우러지고 싶은 마음. 이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을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결을 지닌 존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름답고, 이 노래 속의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NU 숲」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겹쳐진 획은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뭉근하게 표현하고, 날카로운 곡선 대신 뭉툭한 모양으로 디자인했습니다.

 

 

Q. 다음으로 춤에서 시작한 「NU 하바네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나요?

「NU 하바네라」는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카르멘(Carmen)' 제 1막 아리아의 이름입니다. 큰 파도의 물결 같은 붉은 드레스와 정열적인 춤 플라멩코, 그리고 자유로운 집시 여자 카르멘의 캐릭터성을 소재로 삼아 하바네라를 제작했습니다. 「NU 하바네라」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플라멩코 춤처럼 끊이지 않는 움직임과 이어짐입니다. 이런 포인트들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유기적으로 붙어있는 획의 연결부로 나타냈습니다.

 

 

Q. 마지막으로 「NU 묘법」은 미술과 연관이 있죠.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NU 묘법」은 동명의 작품인 박서보의 『묘법』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묘법』 시리즈는 그 자체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는 특히 신형철의 책 『인생의 역사』의 표지로 사용되어 더욱 애정을 갖게 된 작품입니다.

 

폰트를 기획하며 주변의 글과 그림을 살펴보다가, 그때 당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표지이자 매력적인 '질감'이 돋보이는 작품인 『묘법』이 폰트로 표현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문장이나 단락의 표면에서 질감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묘법』의 질감이 폰트로 구현된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Q. 세 폰트의 공통점이 있다면, 각각 두 가지 스타일의 라틴으로 구성된 점인데요. 한글이 아닌 라틴을 두 가지 스타일로 제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인센스 페이퍼 스페시먼'과 같은 유형의 제품에 폰트를 빠르게 사용하기 위해 한글보다 라틴을 먼저 작업했습니다. 제품에 그래픽 요소로 사용하기 위해 라틴 디스플레이 스타일을 먼저 기획했는데요. 이후에 자연스럽게 디스플레이가 있으니 일반적인 스타일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한데 모여 두 가지의 스타일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개의 폰트가 모두 동일한 스타일로 변주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기획과 형태에 맞게 디스플레이 스타일의 형태가 고안되었어요. 「NU 숲」은 함께 어우러지고픈 마음을 Cursive 형태로, 「NU 하바네라」는 플라멩코의 춤의 속도를 더 강하게 보여주기 위해 Italic을, 「NU 묘법」은 더 강한 흘림이 반영된 Display를 기획했습니다.

 

 

Q. 언급해 주셨듯이 인센스 페이퍼로 견본집을 제작하신 작업이 인상적이었어요. 특별히 인센스 페이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인센스 페이퍼 스페시먼은 1집의 주제를 따르되 각 폰트가 가지는 무형의 소재가 아닌, 제품의 성격에서 출발했습니다. 폰트는 무형의 제품이고, 타입을 소재화하여 만드는 것들은 유형의 제품입니다. 인센스 페이퍼 스페시먼은 유형의 제품이지만, 그 용도에 따라 제품을 사용하면 결국 재가 되어 다시 무형으로 돌아가는 순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용하면 사라져 버리는 성격의 다양한 제품을 고민해 보다가, 인센스 페이퍼라는 소재를 사용해 견본집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인센스 페이퍼 스페시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유형과 무형⟫이라는 주제의 완성이네요. 그럼 1집의 세 폰트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각각 추천해주세요!

「NU 숲」은 세 개 패밀리 중 가장 두꺼워서 강한 인상의 타이틀에 적합합니다. 피켓이나 현수막 등의 헤드라인에 사용하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NU 하바네라」는 획대비가 크다 보니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로 사용하기 적합해요. 「NU 묘법」은 획대비가 가장 적고 두께감도 Regular에 가까워서 인쇄용으로 가장 적합합니다.

 

 

Q. 앞으로도 『누타입』에서 제작하실 폰트들이 기다려집니다. 다음 프로젝트 2집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살짝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누타입』 2집은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숍 '로파 서울(Lofa Seoul)'에서 팝업 전시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도자 브랜드 '슬로렌스(Slorence)'와 협업해 '오브제 타입Objet Type'이라는 주제로 폰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자 제품, 아트북, 굿즈 등 다양한 유형의 제품을 제작했습니다. 4월 12일 토요일부터 4월 27일 일요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되니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뿐만 아니라 타입 디자인과 도자를 엮은 합동 워크숍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워크숍 소식은 누타입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소식을 알릴 예정이에요.
그리고 2집의 폰트 3종도 4월 11일에 산돌구름에 입점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Q. 오프라인 팝업에서 도자 제품과 굿즈를 만나볼 수 있다니 정말 기대되네요! 마지막으로, 『누타입』의 입점을 환영하는 산돌구름 사용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앞으로도 저희의 다양한 활동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람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