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산돌구름 유저들에게 『누타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누타입』은 세 명의 여성 타입 디자이너 김슬기, 김진희, 이수현으로 구성된 타입 파운드리입니다.
Q. 『누타입』의 로고와 이미지 곳곳에서 다람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라는 문구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이 캐릭터를 메인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맞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글 팬그램*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에서 따왔어요. 대단한 이유는 없고 "다람쥐? 귀엽다. 심볼로 쓰자!"라는 엄청 단순한 흐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팬그램: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사용해 만든 문장을 뜻한다. 한글에서는 모든 자음 또는 모음이 포함된 문장을 일반적으로 팬그램이라 부른다.
Q. 귀엽고 직관적인 로고게 인상적이었어요. 『누타입』의 세 디자이너 분들께서 하나의 파운드리로 모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타입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연차, 성별, 환경 등 비슷한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분야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닮아 있었어요. 때문에 단순히 '세 명이서 힘을 합쳐 더 많은 폰트를 만든다'기보다, 그러한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해 『누타입』을 시작했습니다.
Q. 그렇다면 ‘누타입’이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저희의 고민은, 진입 장벽이 높다는 분야에 대한 인식—특히 한글 폰트—과, 폰트라는 디지털 상품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폰트뿐만 아니라 타입을 소재화하여 다양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들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새로운'을 뜻하는 접두사 'Nu'에 'Type'을 붙여 '누타입(Nutype)' 이란 이름이 되었습니다.
Q. 『누타입』이 시도하고자 하는 '새로움'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인가요?
저희는 타입을 다양한 매체와 엮어서 '폰트'라는 디지털 제품뿐만 아니라 주제에 적합한 유형의 제품을 만들고 주제에 따른 여러 활동을 합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 공개될 2집의 경우 '오브제 타입(Objet Type)'이란 주제로 도자 브랜드와 협업해서 도자 제품과 폰트를 만들고, 팝업 전시와 협업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러한 방식과 과정이 타입 디자인 분야 안에서 '새롭다'라고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결국 '타입 디자인-폰트'라는 고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타입이 가진 가능성을 더 넓게 보고자 하려는 의도입니다.
Q. [밸런스 게임] 평생 내가 만든 폰트만 쓰기 vs. 평생 남이 만든 폰트만 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원하는 폰트를 매번 직접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 괴롭지만…. 세 명의 타입 디자이너가 있으니, 전자를 택하겠습니다! 제가 못 만들면 둘 중 누군가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요. 호호.
Q. 세 분께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주제 기획부터 각자의 폰트를 제작하기까지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나요?
「죽순」을 처음 기획할 때 가장 중심이 되었던 생각은 사실 이 활자의 용도나 수요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지금까지 안 해본 걸 하고 싶다’ 였어요. 이전까지 활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주로 기업의 브랜딩 전용 서체를 제작하는 일을 했었고, 그것들의 90%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고딕체였거든요. 그래서 일단 고딕이 아닌 것, 꽉 찬 구조가 아닌 것, 네모꼴이 아닌 것,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죽순」은 개별 자소의 형태를 가능한 다 다르게 유지하며 글자의 외곽 형태를 들쭉날쭉하게 만든 한글을 목표로 했습니다. 개별 자소의 형태를 유연하게 변형하며 깔끔한 네모꼴 외곽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고딕체와는 공간 구성의 원리가 다르게끔요. 속공간이 좁고 빽빽할 뿐 아니라 큰 글자는 꽤 크고 작은 글자는 아주 작기 때문에 작게 썼을 때에 특히 불균질한 리듬이 있습니다. 획의 스타일에 있어서는 송체 목판본 글씨를 본뜬 20세기 초 중국 활자체 양식 방송체(仿宋体)와 조선 후기 한글 목판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만, 본격적으로 목판본의 인상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안 해본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을 우선하며 만든 글자입니다.
Q. 「죽순」은 이름처럼 뾰족하고 곧은 대나무를 연상시키는데요. 처음부터 그 컨셉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름인지, 아니면 나중에 붙여진 이름인지 궁금합니다.
「죽순」은 제8회 한글꼴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인데요, 심사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익명성과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기획안 발표 자리에서 제 이름과 활자의 이름을 가리고 야채나 과일 이름으로 대체하라는 지침이 그 중 하나였는데요. 그 당시 스케치의 쭉쭉 뻗어가는 획의 느낌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골라 심의위원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기 때문에 야채 이름으로 ‘죽순’을 골랐어요. 그렇게 고른 야채 이름이 결국 끝까지 이어져서 「죽순」이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고풍스럽고 시원시원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던 의도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된 것 같아요.
Q. 언급해 주신 것처럼 「죽순」은 제8회 한글꼴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기도 한데요. 선정 당시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지원사업 선정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 걸렸는지도 궁금합니다.
선정 당시에는 물론 기뻤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한글꼴창작지원사업의 심의위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폰트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죽순」은 2023년 8월에 지원사업의 선정작으로 결정되었고, 지원사업의 방침에 따라 2년의 제작 기간이 주어져 2025년 8월 최종 출시가 될 예정입니다.
초기 스케치는 머릿속에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생각을 디지털로 구체화해 옮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다만 선정 직후 이런저런 일이 많아 제작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몇 달간은 「죽순」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다음 몇 달간은 완전히 몰입해서 제작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죽순」에 투입한 시간이 정확히 얼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Q. 아직 최종 출시 전이지만, 산돌구름에서 「죽순」을 베타 버전으로 먼저 만나보게 되었어요. 베타 버전으로 선 출시하신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활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여러 서체들을 출시해 보니, 제작자 입장에서 고민했던 부분과 사용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아예 별개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혼자서 고민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실제 사용사례들을 살펴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에 베타 버전을 먼저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순」 베타 버전을 써 보신 분들이 그 사용사례를 산돌의 폰트인유즈 페이지에 올려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 외에 따로 의견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이나 이메일로 연락을 주셔도 좋습니다.
✦ 이메일 / wiyejin.mail@gmail.com
Q. 몇 년에 걸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중간에 기획 방향이 바뀌었던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나 고민하신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물론 기획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 활자에 담고 싶은 아이디어가 두 가지 이상이라서, 이편과 저편을 왔다갔다 했던 것 같아요. 글자 외곽 형태를 들쭉날쭉하게 만든다는 컨셉에 충실하려다가도 「죽순」이 실제로 사용될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래도 외곽이 좀 균질하고 속공간이 커야할 것 같고, 목판본 글씨의 스타일을 유지하려다가도 컨셉추얼한 부분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했고…. 또 작도의 기술에 관련한 어려움도 있었는데, 약간의 기울기가 있는 디자인이라서 균형을 잘 맞춰 그리기가 어려웠어요.
Q. “대나무 숲처럼 시원한 느낌”이라는 설명과 전체적인 인상에서 동양적인 인상이 크게 느껴졌는데요. 이를 라틴에서 표현할 때에는 통일감을 주기 위해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죽순」의 라틴 알파벳은 한글만큼 오래 생각하고 그리지는 않았는데요. 그래도 한글의 전반적인 인상과 맞추기 위해 속공간을 작고 좁게 설계한다든지, 'n,h,b,p' 등의 어깨 쪽으로 올라가는 아치를 급격한 기울기로 설정한다든지, 고전적인 대문자 구조를 살짝 빌려온다든지 하는 장치를 두었어요. 하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죽순」이 정식 버전으로 출시될 때 라틴 알파벳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죽순」 정식 버전은 어떻게 완성될지 기다려집니다. 그렇다면 「죽순」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지 추천해 주세요!
「죽순」은 초기에는 본문용으로 기획했지만, 만들다 보니 큰 사이즈로 썼을 때의 인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제작자의 관점을 내려놓고 바라본 「죽순」은 큰 사이즈에서는 기세가 있고 시원한 느낌을, 작은 사이즈에서는 고풍스럽고 진지한 느낌을 주는 활자 같아요. 정성스러운 공예품의 소개글, 고전 활극 소설, 도심 속 유적지의 안내문, 전통을 간직한 관광지의 소책자 등등, 예스러움과 섬세함이 동시에 필요한 다양한 상황에서 본문용은 물론 소제목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활자입니다. 물론 실제로 어떤 영역에서 주로 쓰이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크고 작은 사이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Q. 공모전을 위해 「죽순」 이외에도 다른 시안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다른 후보작이 있었다면 신서체로 만나볼 수 있을까요?
공모전에 출품했던 다른 시안들 중에서는 상용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아이디어는 아직 없어요. 다만 올해 모리사와 타입 컴페티션에서 금상을 수상한 「완완」이라는 서체의 스케치가 있는데요. 이 서체를 곧 출시하기 위해 제작 중에 있습니다.
「완완」은 저품질 프린터로 인쇄한 활자들이 갖고 있는 작은 인쇄여분띠(잉크가 번지거나 밀려나와 모서리가 불룩해진 형태)를 디지털 활자에 의도적으로 도입해 가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고안한 제목용 서체입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고, 복고풍이면서도 산뜻한, 여러모로 복합적인 인상을 구현하려고 하고 있고요. 아직 다듬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조만간 출시할 수 있도록 빠르게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Q.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루 빨리 「완완」도 만나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우이예』의 입점을 환영하는 산돌구름 사용자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이예』는 앞으로 전통에서 출발해 현대적인 수요에 발맞춘 서체들을 다양하게 출시할 예정입니다. 활자 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제가 그렸던 글자들을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와 상황에서 마주치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제작자인 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곳에서 『우이예』의 글자들을 내키는대로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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