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프타입(Cosmope Type)은 시각적 실험을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글꼴을 선보입니다.
코스모프는 Cosmos와 Scope의 합성어입니다. 우주만큼 넓고 깊은 세상의 지식을, 아름다운 활자와 함께 탐험하길 바랍니다.
뮤즈의 손글씨를 훔칠 수 있다면
처음 이 폰트의 구상을 시작했을 때 바로 떠올린 이미지는 여신 뮤즈(Muse)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음악과 문학, 예술 전반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이 바로 뮤즈입니다. 뮤즈는 노래와 연주에 관한 일화가 많은 존재이며, 영어 단어 'music'의 어원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 폰트에도 멜로디가 흐르는 듯한 인상을 담고 싶었습니다. 여신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흐름이 느껴지도록 말이죠.
평소 곡선감 풍부한 스케치를 즐겨 하다 보니, 이를 우아한 느낌의 폰트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날카롭지 않은 부드러운 인상, 제목용 크기에서 쓸 수 있는 장식 요소들. 여신들이 남긴 손글씨를 잠시 빌려와 한글로 옮긴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라틴 캘리그라피를 모티브로 그린 곡선형 글자 스케치들
펜의 우아함과 한글 조형 사이에서
초기에는 카퍼플레이트(Copperplate) 같은 알파벳 캘리그라피와 스크립트체의 인상을 주로 모티브로 삼고 한글로 표현해 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테스트를 하면서 폰트 디자인 기준을 몇 가지 세울 수 있었는데요.
제목용 사이즈로 썼을 때 읽기 편안하고, 우아한 인상을 잘 전달하는 방향. 자연스러운 부리가 있는 부리체(명조체) 계열의 이미지. 뾰족한 펜촉(포인티드닙)으로 한글을 표현하되 한글 고유의 조형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글로 그려보면서 기울기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똑바로 쓴 모습이 단단하지만 덜 유연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반대로 알파벳처럼 각도를 기울이면 한글 모임꼴별로 중심이 잡히지 않는 느낌도 있었죠. 시도 끝에 기울기를 배제하고 수직 축을 기준으로 똑바로 쓴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뾰족한 펜촉으로 썼을 때 나오는 기울어진, 혹은 똑바로 서 있는 글꼴
(좌: Mastering Copperplate Calligraphy by Eleanor Winters 표지 / 우: Script and cursive alphabets, Dover Publication)
여신의 무게를 정하는 일
뾰족한 펜촉으로 쓴 듯한 얇은 획이 디스플레이용 크기에서 설득력 있게 보이도록 폰트의 무게를 정하는 것이 고민이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굵게 만들어보기도 하고 아주 뾰족하고 여리여리한 얇은 획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여러 무게로 테스트해 보았을 때, 얇은 느낌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제목에서도 연약해 보이지 않는 적절한 무게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역시 두꺼운 획보단 얇아야 무드가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기울기, 무게, 인상을 고민하며 만든 초기 형태들
한글 모임꼴들은 모두 같은 글자폭(Width)을 가진 고정폭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알파벳 조형에서 출발한 만큼 가변폭의 가능성도 잠시 검토했지만, 전체적인 안정감을 더 중요하게 보았죠. 결국 「뮤즈」는 획의 흐름은 조금 더 유연하게 가져가고, 구조만큼은 단단하게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한글 모임꼴의 고정폭 구조와 획의 유연한 흐름
뾰족함과 촉촉함
수직으로 세운 한글의 구조는 중심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지만, 자칫 형태가 경직되어 보일 위험도 있었습니다. 또한 뾰족한 금속 펜촉으로 그은 가는 획은 우아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었죠. 그래서 획 끝 부분에 잉크가 둥글고 촉촉하게 맺히는 느낌을 적극 차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하학적인 정원형이 아니라, 물방울형 터미널(teardrop terminal)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소를 설계했습니다. 다만 알파벳의 'S'나 'r'의 물방울 모양을 그대로 한글에 옮기기는 어려웠죠. 한글 부리체의 조형을 토대로 위치와 크기를 바꾸고 획의 변화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홀자 'ㅏ'의 곁줄기, 가로보의 양 끝 부분, 세로획의 하단 맺음, 홀자 'ㅠ'의 왼쪽 획 등은 잉크가 맺힌 촉촉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요소들입니다.
물방울형 터미널(teardrop terminal)의 모습을 생각하며 만든 요소들
유연한 흐름을 위한 대체 글리프
한글의 구조와 디테일을 모두 정하고, 거의 대부분의 글자를 만들고 난 뒤 대체 글리프를 만들 수 있었어요. 「뮤즈」는 초기 단계부터 대체 글리프(Alternative Glyphs)를 계획해 왔는데, 일부 글꼴에서 곡선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이 풍부하게 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대체 글리프는 오픈타입 스타일 세트로 만들어 Adobe 등의 편집 프로그램 안에서 쉽게 바꾸어 쓰실 수 있습니다.
'ㅅ, ㅈ, ㅊ' 첫닿자는 기본적으로 2획으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필기감이 돋보이는 1획 표현으로 교체 가능합니다. 자연스러운 필기감과 함께 풍성하고 우아한 곡선이 매력적이지요. 또 받침 'ㄴ, ㄹ'에서도 조금 더 부드러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곡선 형태의 대체 글리프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대체 글리프는 Adobe 프로그램과 Figma에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글 전용 폰트 「뮤즈」
「뮤즈」는 한글 2,780자, 숫자 10자, 기호 429자로 이루어진 한글 전용 폰트입니다. 한글 디자인에 중점을 두어 라틴 알파벳은 구성에서 제외하였어요. 대신 사용자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조합을 시도할 수 있는 여백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전반적으로 둥근 인상과 유려한 곡선감을 지닌 한글 조형은, 필기감이 살아 있는 알파벳과 함께 놓였을 때 특히 잘 어울립니다. 화려한 스크립트체는 물론, 세리프 스타일이나 이탤릭 스타일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알파벳과의 페어링을 통해 「뮤즈」가 또 다른 표정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Editor
코스모프타입 이주현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