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탄생:
70-80년대 최초의 힙합,
그 때의 타이포그래피는 어땠을까?
1970년대 후반 브롱크스의 파티 플라이어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 그래피티가 넘쳐나던 동네에서 나온 문화인데, 플라이어의 글자는 생각보다 훨씬 단정하다. 오히려 굵고 반듯하고, 어떤 건 1930년대 재즈 클럽 포스터처럼 생겼다. 지하철 벽을 가득 채우던 거친 스타일의 그래피티랑은 완전히 다른 언어다. 왜 같은 동네, 같은 세대, 심지어 같은 사람들이 만든 문화인데 시각 언어는 이렇게 달랐을까.
답은 플라이어가 해야 했던 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피티는 존재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었다"는 표시. 근데 플라이어는 사람을 불러야 했다. 파티 장소, 날짜, DJ 이름, 입장료 — 이걸 다 담아서 동네 사람들한테 돌려야 했고, 또 읽혀야 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또렷하고, 크고, 임팩트 있는 글자를 택하게 된다.
근데 그 또렷함이 왜 하필 아르데코 느낌인가 —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1970년대 브롱크스는 지금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무너져 있었다. 건물주들이 보험금을 타려고 자기 건물에 불을 질렀고, 블록 전체가 폐허가 됐다. 1977년 월드시리즈 중계 도중 헬기 카메라가 브롱크스의 불타는 건물을 잡으면서 해설자가 내뱉은 말 — "The Bronx is Burning." 그게 그대로 이 시대의 이름이 됐다. 시는 돈이 없었고, 동네는 방치됐다. 그 안에서 DJ 쿨 허크가 1973년 세들라크 애비뉴 1520번지 아파트 파티에서 힙합을 시작했다.¹ ² 그리고 그 파티를 알리는 플라이어를 만든 건 허크의 여동생 신디 캠벨이었다.
¹ The Birth Of Hip Hop: 28 Photos Of The Bronx In The 1970s
² Interview with DJ Kool Herc and Cindy Campbell about the 1973 party where hip-hop began
플라이어를 만드는 도구는 마커, 레터링 스티커, 복사기였다. 컴퓨터도 없고, 인쇄소에 맡길 돈도 없는데 사람들은 모아야 했기 때문에 그 제한된 도구로 최대한 있어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굵은 블록체, 대칭 레이아웃, 별이나 번개 같은 장식 요소들이 들어왔다. 손으로 만든 거지만 최대한 공식적이고 특별한 행사처럼 보이려는 욕망이 담긴 거다. 그게 결과적으로 아르데코의 감각 — 도시적이고, 굵고, 기념비적인 — 과 닮아 있었다.
이 플라이어 문화는 빠르게 정교해진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로 넘어오면서 플라이어 디자인은 하나의 기술이 됐다. 커뮤니티 안에서 플라이어를 잘 만드는 사람이 따로 생겼고, 형광색 종이에 여러 색 잉크를 겹치는 방식, 별 모양 말풍선, 로봇이나 우주 이미지 같은 것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아프리카 밤바타아, 그랜드위저드 시어도어 — 이 이름들이 플라이어 안에서 점점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찍혔다.
여기서 재밌는 건, 그래피티 작가들이 플라이어도 같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하철에 와일드 스타일을 쓰던 손이, 파티 플라이어에서는 읽히는 글자를 썼다. 두 가지 시각 언어를 동시에 구사했던 거다 — 표현의 언어와 소통의 언어. 그래피티가 벽을 향한 외침이었다면, 플라이어는 동네를 향한 초대였다.
1979년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가 나오면서 힙합은 처음으로 레코드가 됐다. 그리고 앨범 커버가 생겼다. 원본 12인치 싱글 커버를 보면 — 벽돌 배경에 굵은 블록 레터링만 있다. 인물도 없고, 장식도 없다. 근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플라이어의 감각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가 전부인 구성, 크고 또렷한 글자 — 사람을 불러야 했던 플라이어의 논리가 레코드 커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거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의 〈The Message〉(1982)는 조금 달랐다. 멤버들이 뉴욕 거리에 서 있는 단체 사진 — 플라이어의 화려함 대신 처음으로 현실의 공기가 커버에 들어왔다. 브롱크스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이 곡처럼, 커버도 동네를 똑바로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힙합이 축제에서 증언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Run-DMC가 나온 1984년부터는 또 달라진다. 아디다스 트랙수트, 페도라 모자, 검정 가죽 — 비주얼이 완전히 정제되기 시작했다. 커버도 마찬가지다. 흑백 멤버 사진 위에 빨간 블록 로고 하나 — 플라이어 시대의 복잡하고 빽빽한 레이아웃은 사라지고, 훨씬 의도적이고 단순한 시각 언어가 자리를 잡는다. 힙합이 동네 파티를 넘어 세계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왜 그래피티 동네에서 나온 문화인데 플라이어는 아르데코처럼 생겼냐고 묻는다면, 답은 이렇다. 그래피티와 플라이어는 같은 욕망에서 나왔지만, 향하는 방향이 달랐다. 그래피티는 도시를 향한 자기 선언이었고, 플라이어는 동네를 향한 초대였다. 읽혀야 했고, 특별해 보여야 했고, 사람을 움직여야 했다. 그 조건 안에서 브롱크스의 10대들이 마커와 복사기로 만들어낸 게 결과적으로 굵고 기념비적이고 도시적인 언어였던 것이다.
“나는 두 개의 레코드판으로 노래를 무한히 늘릴 수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게 전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