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오는 신호에 귀 기울이다
「SD 코스모」
지난 2025년 11월 출시된 「SD 코스모」는 “사이버틱하고 트렌디한 서체가 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시장의 선제적인 요구와 목소리에 응답하여 태어난 서체입니다. 2010년대 디자인 씬을 장악했던 트렌드가 70~80년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따뜻하고 아날로그한 ‘레트로’였다면, 2020년대부터 들어온 흐름은 조금 더 미래적인 시점으로 이동했죠. 일명 ‘쇠맛’이라 불리는 Y2K 감성, 즉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를 풍미했던 ‘퓨처리즘(Futurism)’ 스타일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SD 코스모」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최전선에서 고유의 날카롭고 사이버틱한 매력으로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보통 기존에 출시된 서체를 확장할 때는 굵기를 얇거나 두껍게 베리에이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SD 코스모」는 좀 다른 방향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직선과 강렬한 대각선 컷팅 요소로 대변되는 「SD 코스모」의 사용성은, 단순히 획 두께의 스펙트럼을 넓힌다고 해서 좋아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SD 코스모」에게는 굵기의 다양성보다, 서체 고유의 강렬한 인상을 밀도 있게 지켜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장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와중, 디자이너의 눈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실제로 「SD 코스모」를 사용한 작업물을 목격했을 때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랭킹닭컴
“어? 「SD 코스모」를 네모꼴 틀에 꽉 차게 직접 다듬어서 썼네?”
원래 「SD 코스모」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약간의 ‘탈네모꼴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이스라인이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역동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내죠. 그런데 어떤 유저들은 그 리듬감 때문에 생기는 여백의 공간을, 자소의 크기를 확확 늘려서 덩어리감 있게 채워 쓰고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랭킹닭컴
사실 산돌에서 가장 꾸준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폰트는 ‘꽉 찬 네모꼴’ 구조의 서체들입니다. 한글이 정방형 틀 안에 꽉 차게 설계되었을 때 시각적인 주목도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용예시처럼 세 줄을 꽉꽉 채워 쓴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에서는 시선을 잡아 끄는 덩어리감과 파워가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원래 코스모가 가진 자소 고유의 엣지 있는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되, 전체적인 구조 틀을 완전히 바꾸어보면 어떨까?’
팽창시키고 채워 넣기
「SD 코스모 Maxi」의 주재료는 당연하게도 오리지널 「SD 코스모」입니다. 말 그대로 주어진 사각형 틀 안의 남는 공간마다 기존 자소들을 밀도 있게 채워 넣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과제는 받침이 없는 글자(가, 고, 과 등)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초성과 중성만으로 이루어진 민글자는 받침이 있는 글자보다 네모꼴 안에 배치했을 때 상대적으로 여백이 크게 남습니다. 따라서 이 여백을 채우려고 했을 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조율하면서도, 글꼴 전체의 고른 회색도와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한글과 호흡을 맞춘 영문과 숫자
한글의 구조가 꽉 찬 네모꼴로 설계된 만큼, 영문(라틴)과 숫자도 이에 맞추어 비례를 재조정했습니다.
특히 소문자의 x-height(소문자 x를 기준으로 한 글자 몸체의 높이)를 크게 설정해 한글과의 시각적 크기 차이를 줄였습니다. 이를 통해 영문이 한글 사이에서 지나치게 작아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숫자 역시 동일한 기준 아래 스케일을 조정했습니다. 한글, 영문, 숫자가 함께 사용될 때 각 문자 체계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밀도와 균형을 갖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Maxi」라는 이름에 담긴 정체성
「SD 코스모」 를 이을 새로운 시리즈 서체 기획을 완료하고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이름’이었습니다. ‘코스모 2’, ‘코스모 Full’, 심지어 ‘꽉찬 코스모’ 등 직관적이면서도 다양한 후보군이 테이블 위에 올랐습니다.
수많은 논의 끝에 낙점된 이름은 바로 「SD 코스모 Maxi」입니다. 영어에서 ‘최대’를 뜻하는 단어 ‘Maximum’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서체에 부여된 공간을 ‘최대한(Maximum) 활용한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담았습니다.
Maximum으로 Turn it up!
‘기존의 매력을 지키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상을 만든다’는 것. 모순 같아 보이는 이 미묘한 경계를 찾아가는 과정은 디자이너로서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었습니다. 지면이나 화면 위에 묵직한 힘을 싣고 싶을 때, 그리고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주인공 같은 제목이 필요할 때, 「SD 코스모 Maxi」를 한번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