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하다 보면 폰트를 고르다가 문득 고민에 빠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내고 싶은데 일반적인 라운드 고딕은 조금 심심하고, 그렇다고 팬시 폰트를 쓰기에는 너무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죠.
일본 폰트 회사 이와타(イワタ)의 「후쿠마루고(福まるご)」는 바로 그런 고민에서 좋은 대안이 되어주는 서체입니다. 2020년 3월 첫 출시 이후 특유의 부드럽고 개성 있는 인상 덕분에 영화, 출판,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실루엣을 가진 후쿠마루고가 완성되기까지, 이와타 디자인팀이 거친 7년의 개발 과정을 소개합니다.
오래된 금속활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
후쿠마루고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 혼다 이쿠미(本多育実)는 입사 초기 회사 창고에서 이와타의 오래된 금속활자 견본을 발견했습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아날로그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활자에 매료된 그는, 이 감성을 현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서체로 되살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타 활자 견본
하지만 오래된 활자의 자유로운 곡선을 현대적인 디지털 폰트로 구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혼다 디자이너는 서두르기보다 다양한 서체 제작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실력을 쌓았고, 틈틈이 아이디어를 다듬었습니다. 2013년 처음 기획을 시작한 뒤, 여러 차례의 수정과 개발을 거쳐 7년 후, 2020년 드디어 후쿠마루고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독성과 개성을 동시에 만든 세 가지 디테일
후쿠마루고는 단순히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고딕 서체가 아닙니다. 오래된 활자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여러 세밀한 장치를 담았습니다.
① 선에 살아 있는 미묘한 리듬감
후쿠마루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획의 미묘한 두께 변화입니다. 이는 활판 인쇄 시절 강한 압력 때문에 잉크가 가장자리로 살짝 번져 보이던 현상(마지널 존, Marginal Zone)에서 착안했습니다. 덕분에 획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어 냅니다.
② 획이 만나는 부분의 자연스러운 볼륨
획과 획이 만나는 교차점마다 미세하게 살이 차오르는 듯한 부드러운 라운딩을 적용해 서체 전체에 볼륨감을 주었습니다.
③ 절제된 짧은 삐침
또 하나의 특징은 삐침의 형태입니다. 안쪽으로 힘을 꾹 눌러 담은 듯한 이 삐침은 원래 금속활자마다 길이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를 기준으로 삼을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곡선을 여러 사람이 작업하면 미묘한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곡률을 수치화해 관리했고, 작업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지 않도록 기준을 철저히 통일했습니다.
특히 다섯 가지 웨이트가 하나의 패밀리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상당수의 글자를 완성한 뒤 글자의 크기와 비례를 처음부터 다시 조정하는 대규모 수정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이 방대한 작업을 단 세 명의 디자이너가 맡았기에 개발에는 6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복각이 아닌 '현대적인 재해석'
후쿠마루고는 과거의 활자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의 디지털 폰트로 쓰기 좋게 원본의 매력은 살리되 디자인을 정밀하게 조정했습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성 요소의 형태를 깔끔하게 통일시켰고, 사용자가 화면과 인쇄물에서 마주했을 때 읽기 쉽고 익숙한 글자 형태로 조정했습니다. 특히 글자마다 제각각이었던 획의 굵기, 무게중심, 골격 등의 균형을 현대적인 밸런스로 다시 잡았습니다.
하나의 한자에 다섯 가지 표정을 입히다
오리지널 후쿠마루고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와타는 동일한 한자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다섯 가지 가나(히라가나+가타카나) 시리즈를 개발했습니다. 각 서체는 디자인 특징을 하나의 동사로 표현한 이름과 고유의 컬러를 갖고 있습니다.
① 우네루 (ウネル ) — ‘구불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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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혼다 이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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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장식적인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아르누보 양식과 파도의 이미지에서 착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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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원작보다 획을 조금 가늘게 다듬어 리듬감을 살렸으며, 손으로 쓴 듯한 필압과 유려한 장식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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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컬러: 네이비
② 카타루 (カタル) —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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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사가구치 유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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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디지털 폰트가 없던 시절, 영화 스크린 자막을 위해 한 자 한 자 손으로 썼던 ‘영화 자막 글자’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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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가로획을 길게 사용해 안정적인 인상을 주며, 자막용 서체에서는 드물게 다섯 가지 웨이트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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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컬러: 세피아 브라운
③ 아소부 (アソブ ) —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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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타케시타 나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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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동네의 오래된 표지판의 레터링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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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표지판에 적혀 있던 단 4글자의 라운드 고딕을 바탕으로, '이 글씨를 쓴 사람이라면 다른 글자는 어떻게 썼을까?'라는 상상력을 발휘해 확장한 서체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캐주얼한 흐름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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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컬러: 연두색
모티프가 된 표지판
④ 타타즈무 (タタズム ) — ‘멈춰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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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타케시타 나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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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이와타의 ‘9포인트 금속활자 고딕’의 골격을 바탕으로, 서양 산세리프 활자의 감각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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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대칭적이고 자로 잰 듯한 현대 폰트 구조에서 벗어나, 옛 활자 특유의 의도된 불균형을 살렸습니다. 작은 문장 부호가 유난히 전통적이고 차분한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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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컬러: 지장색(짙은 적색)
이와타의 ‘9포인트 금속활자 고딕'
⑤ 키자무 (キザム ) —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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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타케시타 나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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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아크릴이나 금속판에 조각기로 글자를 파고 도료를 채워 넣던 ‘기계 조각’ 레터링에서 착안한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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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후쿠마루고 패밀리 중 유일하게 가로 폭이 좁은 정갈한 장체(Condensed) 구조입니다. 타자기처럼 가로 라인을 맞추어 깔끔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온기가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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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컬러: 황금색
Note: 흥미로운 점은 아소부·타타즈무·키자무 세 서체를 모두 타케시타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 사람이 여러 서체를 디자인하면 디테일이 비슷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작은 글자의 비율은 물론 문장부호의 형태까지 각각 새롭게 설계해 서로 다른 개성을 갖도록 했습니다.
디자이너를 위한 후쿠마루고 활용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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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d / Heavy]
포스터, 북커버, 브랜딩 타이틀처럼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작업에 잘 어울립니다. 특유의 선 굵기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 적은 글자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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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um]
기본 고딕의 단단한 중심 뼈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화면에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영상 자막으로 활용해도 가독성이 깨지지 않고 눈에 잘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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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 Thin]
본문이나 작은 설명문에서도 안정적인 읽기 경험을 제공합니다. 반대로 아주 크게 확대해 사용하면 섬세한 획의 표정을 강조하는 독특한 타이틀 연출도 가능합니다.
후쿠마루고 IN USE!
다양한 작업 속에서 따뜻한 매력을 더한 후쿠마루고의 활용 사례를 모았습니다.
7년에 걸친 연구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후쿠마루고 패밀리를 지금 산돌구름에서 만나보세요!
자료 및 이미지 출처
본 콘텐츠는 이와타(イワタ) 디자인팀 인터뷰와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와타 공식 Note 「2023年イワタ新書体『福まるごファミリー』PART.1」
・이와타 공식 Note 「2023年イワタ新書体『福まるごファミリー』PART.2」
・후쿠마루고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