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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브랜드 디자인은 이제 그만

글로벌 브랜드가 '세리프'로 갈아타는 이유

글로벌 브랜드가 '세리프'로 갈아타는 이유

한동안 미니멀한 산세리프가 지배했던 브랜드 디자인에 세리프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사례를 통해 최근 세리프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와 타이포그래피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달라지는 브랜드 타이포그래피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브랜딩에서는 장식을 덜어낸 산세리프 로고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높은 가독성과 다양한 매체에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이었죠. 패션부터 테크, F&B까지 여러 브랜드가 기존 로고를 단순화하면서 비슷한 인상의 워드마크가 늘어났고, 이를 두고 ‘블랜딩(Blanding)’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블랜딩(Blanding): ‘특색 없는, 밋밋한’을 뜻하는 blandbranding을 결합한 말.
브랜드들이 개성을 덜어내고 비슷한 미니멀 디자인을 택하면서 시각적으로 획일화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최근, 조금 다른 흐름이 눈에 띕니다. 그 변화를 실감하게 한 사례가 바로 최근 공개된 코카콜라의 새로운 브랜딩인데요. 브랜드의 오랜 역사에서 영감을 얻은 커스텀 세리프 서체가 새로운 비주얼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세리프를 다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몇 년 전부터 F&B와 패션을 중심으로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뿐 아니라 테크 기업에서도 세리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고요. 브랜드들은 왜 다시 세리프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눈에 띄는 사례와 그 안에 담긴 타이포그래피 디테일을 함께 살펴보아요.

 


 

코카콜라(Coca-Cola): 브랜드의 역사에서 찾은 세리프

최근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브랜딩 스튜디오 JKR,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스튜디오 브로디 어소시에이츠(Brody Associates) 등과 함께 새로운 브랜딩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눈에 띄는 건 익숙한 코카콜라 로고와 새로운 세리프 전용서체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인데요.

 

코카콜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스크립트 로고는 그대로 두고, 광고나 패키지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새로운 전용 세리프 서체를 활용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보다, 기존의 로고와 리본 디테일 같은 익숙한 요소들을 살리면서 타이포그래피에 변화를 준 것이죠.

 

새롭게 만들어진 전용 서체 ‘Better With’의 특징을 한번 살펴볼까요? 소문자 위아래로 뻗는 획인 어센더와 디센더(ascender/descender)를 비교적 짧게 처리한 점이 눈에 띄는데요. 덕분에 글자가 작아져도 존재감이 있고,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코카콜라의 스크립트 로고와 나란히 놓였을 때도 확실한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이 서체의 출발점은 바로 코카콜라가 오랫동안 쌓아온 광고 아카이브에서 찾았다고 하는데요. 1800년대 초창기 과거 광고에서 발견한 세리프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오늘날의 사용 환경에 맞게 다시 풀어냈다고 해요. 새로운 스타일을 외부에서 가져오기보다, 140년에 가까운 브랜드의 역사 속에서 지금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죠. 과거의 디자인이 오늘의 코카콜라를 새롭게 보여주는 재료가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버거킹(Burger King): 맛있는 햄버거를 닮은 세리프

 

버거킹은 2021년, 20여 년 만에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입체적인 로고를 걷어내고, 1960~70년대 사용했던 로고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하고 둥근 디자인으로 돌아갔죠.

 

코카콜라와 비슷하게, 버거킹의 리브랜딩에서도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세리프 스타일의 전용 서체인데요. ‘Flame’이라는 이름의 커스텀 서체는 햄버거를 비롯한 버거킹 음식의 둥글고 풍성한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해요. 굵고 통통한 획과 부드러운 곡선, 큼직한 세리프가 어우러지면서 단정한 인상보다는 한눈에 봐도 유쾌하고 먹음직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Flame'은 타입 디자인 스튜디오 Colophon Foundry가 제작했다고 합니다. 패키지에서는 글자를 크게 배치하거나 자유롭게 조합하면서 서체 자체를 하나의 그래픽 요소처럼 활용했는데, 1970년대 타이포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는 풍성한 형태 역시 버거킹이 되살리고자 했던 친근하고 유쾌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코카콜라와 버거킹을 함께 보면, F&B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를 세리프 서체의 특징으로 잘 풀어냈다는 공통점이 보이는데요. 깔끔하고 정돈된 산세리프 대신 보다 표정이 뚜렷한 세리프를 활용해 음식이 주는 따뜻함과 즐거움, 브랜드만의 개성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오랜 역사를 가진 두 브랜드 모두 과거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찾았다는 점도 닮아 있죠.

 

 

한국 버거킹에서도 ‘Flame’의 특징을 살린 한글 서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데요. 광고대행사 스튜디오좋이 작업한 한글 서체를 보면, 라틴의 둥글고 통통한 형태를 한글의 구조에 맞게 자연스럽게 풀어낸 모습이 눈에 띕니다. 덕분에 국내 광고와 매장에서도 버거킹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감성을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버버리(Burberry): 헤리티지를 되살린 세리프

 

 

명품 패션 업계는 2010년대 후반 '블랜딩' 바람이 가장 거세게 불었던 곳입니다. 발렌시아가, 생로랑, 버버리 등 너도나도 오래된 로고를 지우고 굵고 차가운 산세리프 글자로 바꿔 탔죠. 하지만 이 흐름을 가장 먼저 뒤엎은 것 역시 버버리였습니다.

 

 

버버리는 2018년 피터 사빌(Peter Saville)이 디자인한 간결한 산세리프 로고를 선보이며 당시 패션 업계의 미니멀한 흐름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4년 반 만인 2023년, 다니엘 리(Daniel Lee)의 합류와 함께 다시 개성 강한 세리프 워드마크를 꺼내 들었습니다.

 

새 로고는 버버리의 초기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가늘고 대비가 있는 세리프와 B와 R 윗부분의 독특한 곡선을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 2018년 사라졌던 기사 문양(Equestrian Knight)까지 다시 등장하면서 버버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역사와 개성을 전면에 드러냈죠. 모두 비슷하게 정돈되어 가던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버버리는 오히려 과거의 디자인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다시 찾아냈습니다. 세리프가 단순히 클래식한 분위기를 내는 것을 넘어, 브랜드를 다시 ‘버버리답게’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앤스로픽(Anthropic): AI에 표정을 더한 세리프

 

 

F&B와 패션을 넘어, 최근에는 테크 업계에서도 세리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 ‘Claude’를 만드는 앤스로픽(Anthropic)이 대표적인데요. 산세리프가 익숙한 테크 업계에서 앤스로픽은 세리프를 중심으로 한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하며 확실히 다른 인상을 보여줍니다.

 

앤스로픽의 브랜드 서체는 학술지나 책을 연상시키는 에디토리얼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특히 긴 글이나 제목에 세리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일반적인 테크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매끄럽고 정돈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선택은 앤스로픽이 강조해 온 연구와 글쓰기 중심의 이미지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기술적인 느낌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사람이 읽고 쓰는 매체에 가까운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한 것이죠. 

 


 

비슷비슷한 글자에서, 다시 개성을 살린 글자로

 

한동안 브랜드 디자인에서 간결하고 정돈된 표현이 하나의 큰 흐름이었다면, 최근에는 다시 ‘어떻게 우리답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눈에 띕니다. 세리프는 그 답을 찾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다시 등장하고 있고요.

 

세리프라고 해서 모두 클래식하거나 따뜻한 것은 아닙니다. 둥글고 통통한 세리프는 유쾌한 인상을, 가늘고 대비가 큰 세리프는 우아한 인상을, 책에서 볼 법한 세리프는 지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죠. 이번에 살펴본 브랜드들도 세리프가 가진 다양한 표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눈여겨볼 변화는 단순히 ‘세리프가 다시 유행한다’는 사실보다, 브랜드들이 다시 자신만의 표정을 가진 글자를 찾기 시작했다는 점인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익숙한 브랜드의 로고나 패키지를 마주친다면, 어떤 글자를 선택했고 그 글자가 브랜드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한번 눈여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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