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하나가 폰트가 되기까지
듀오링고(Duolingo)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뭘까요? 아마 초록색 부엉이 Duo일 거예요. 앱을 켜자마자 만나는 부엉이부터 학습을 독촉하는 알림까지, Duo는 단순한 마스코트를 넘어 듀오링고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죠. 그런데 듀오링고의 브랜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Duo의 모습이 캐릭터에만 머물지 않고 글자의 형태 안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에요.
듀오링고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마스코트 Duo의 둥글고 깃털 같은 형태를 바탕으로 ‘Feather Bold’라는 커스텀 서체를 만들었습니다. 런던의 브랜드 컨설팅 스튜디오 Johnson Banks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Fontsmith(현 Monotype)의 타입 디자이너들과 함께 실제 서체로 완성했어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새로운 폰트를 만들자”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출발점은 로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가까웠어요. 기존의 듀오링고가 가진 캐릭터와 일러스트레이션은 이미 충분히 개성이 있었지만, 앱 밖으로 브랜드를 확장했을 때 그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시각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Johnson Banks는 Duo의 형태를 관찰하며, 부엉이의 날개와 깃털에서 보이는 곡선과 움직임을 글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 시작했죠.
로고에서 시작해
알파벳 전체로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g’예요. 듀오링고의 로고를 보면 소문자 g의 끝부분이 살짝 위로 휘어져 있는데, 이 작은 디테일이 Duo의 표현적인 눈썹과 연결됩니다. 듀오링고의 공식 브랜드 가이드에서도 이 부분을 Duo의 눈썹을 반영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완성된 로고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디자이너들은 그 안에서 발견한 특징을 하나씩 다른 글자로 확장했습니다. 날개에서 가져온 둥근 형태, 위아래로 뻗는 획,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 등을 알파벳 전체에 적용하면서 하나의 글자에서 시작된 조형 언어를 서체 전체의 규칙으로 만들어간 것이죠.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는 거의 모든 글자에 대해 여러 형태를 실험했고, 실제 문구와 브랜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하면서 어떤 형태가 듀오링고다운지 계속 검토했습니다. 대문자를 얼마나 개성 있게 만들 것인지도 별도로 테스트했지만, 지나치게 장식적인 ‘날개 모양 대문자’는 알파벳 전체의 통일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보다 단순한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Feather Bold는 단순히 듀오링고 로고에 사용하는 폰트가 아니게 됐습니다. 듀오링고의 공식 가이드에 따르면 Feather Bold는 짧고 강한 헤드라인이나 듀오링고를 강조하는 문구 등에 사용되고, 긴 문장이나 본문에는 보다 중립적인 DIN Next Rounded를 함께 사용합니다.
즉, 브랜드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역할과 실제로 정보를 읽게 하는 역할을 구분하면서도, 두 서체가 함께 사용될 때 하나의 듀오링고다운 인상을 만들도록 설계한 거예요.
‘귀여운 폰트’가 아니라
브랜드의 성격을 만드는 폰트
Feather Bold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 둥근 형태가 단순히 ‘귀엽게 보이기 위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에요. Duo가 가진 둥근 깃털과 장난스럽고 엉뚱한 성격을 글자에 옮겨놓은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듀오링고에서는 캐릭터와 글자가 따로 놀지 않습니다. Duo가 화면 안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몸짓, 일러스트레이션의 둥근 형태, 로고의 곡선, Feather Bold의 글자 형태가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죠. 실제로 Monotype 역시 듀오링고의 아이덴티티 전체가 Duo의 성격과 둥근 깃털 형태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방식은 브랜드를 기억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줍니다. 보통 캐릭터와 폰트는 서로 다른 브랜드 요소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캐릭터는 브랜드의 얼굴이고, 폰트는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듀오링고는 그 둘의 경계를 조금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캐릭터의 형태를 글자로 옮기고, 글자의 형태를 다시 브랜드의 말투로 확장한 것이에요. 그래서 듀오링고의 글자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Duo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폰트가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누가 말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 셈이죠.
좋은 브랜드 폰트는
‘브랜드처럼’ 보여야 하니까
듀오링고의 사례가 재미있는 이유는 폰트를 독립적인 그래픽 요소로 만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Feather Bold는 Duo와 따로 존재하는 새로운 디자인이 아니라, Duo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얼굴에 가깝습니다.
캐릭터를 폰트로 확장하면서 듀오링고는 앱 안에서만 통하던 시각적 개성을 광고, 캠페인, 인쇄물, 디지털 콘텐츠 등 다양한 접점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Feather Bold는 브랜드 리프레시 이후 듀오링고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례가 보여주는 건 꽤 단순합니다. 브랜드의 특징을 폰트에 억지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형태를 글자의 구조로 가져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Feather Bold는 단순히 ‘듀오링고에서 사용하는 폰트’가 아니라, 글자만 보아도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의 목소리가 됐습니다. 타이포그래피를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꽤 흥미로운 방법이죠.
격월 하나씩 타이포그래피 리브랜딩 사례를 소개합니다 | 리브랜딩 사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