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장가석 폰트 디자이너
장가석(张家硕, Jiashuo Zhang)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SD 초양」은 그가 산돌에서 완성한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1929년부터 1957년까지 발간된 《조선말 큰사전》의
한글 민부리 활자를 현대의 환경에 맞춰 재해석한 폰트로,
편집 디자이너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을 반영해 만들어졌죠.
'귀엽지 않은',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새로운 시도’의 결정체인
「SD 초양」을 만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글자를 그리는 사람
― 안녕하세요, 장가석 디자이너님.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4년 넘게 글자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에요. 목표는 다양한 언어를 능숙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 전망 좋은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와서 홍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학교 다닐 때 제 졸업 작품을 보시고 산돌에서 연락을 주셔서 인턴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폰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 첫 작품인 가석체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어떤 폰트인가요?
「가석체」는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폰트입니다. 홍대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폰트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기획했고 졸업 후에 출시까지 하게 됐어요. 처음 생각은 단순했어요. 엄청 두꺼운 폰트가 있으면 좋겠다. 두꺼우면서도 크게 봐도 힘이 있고, 꽉 찬 느낌의 디스플레이용 폰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가석체」
―폰트 이름을 본인의 이름으로 지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름 지을 때 엄청 고민했어요. 폰트 이름은 더할 가(加), 돌 석(石)이고, 제 이름은 집 가(家), 클 석(碩)인데요. 발음은 똑같지만 뜻은 다르게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교수님이랑 얘기하다가 나온 이름이에요. 폰트 분위기랑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 처음 만든 제 폰트니까 더 애정이 가서 제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석체」가 쓰인 사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진짜 많았는데 하나만 꼽자면 제가 처음 발견한 사용 사례예요. 출시하고 한두 달쯤 됐을 때 친구들이랑 인천 차이나타운에 놀러 갔거든요. 근데 거기서 「가석체」가 보이는 거예요. 어떤 카페 간판에 쓰여 있었는데, 한글이 아니라 라틴 알파벳이었어요. 보자마자 0.1초 만에 알았죠. “이거 가석체다!”
사실 출시하고 두 달쯤 됐을 때 아무도 안 쓰는 것 같아서 좀 속상했거든요. ‘왜 내가 만든 폰트는 안 쓰이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근데 인천 차이나타운 카페에서 쓰인 걸 보고 너무 기뻤어요.
그 후에 편집·그래픽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에서 《현대도예–오디세이》라는 전시 포스터에 가석체를 써주신 걸 알게 됐는데, 찾아보니까 전시 현장과 도록에도 써주셨더라고요. 언젠가 누군가 가석체를 엄청 큰 포스터나 간판에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례는 폰트 기획 의도와 맞게 실제 전시 현장에서도 폰트가 엄청 크게 보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경기도자미술관 소장품상설전 《현대도예–오디세이》 도록, 전시 현장
―지금까지 산돌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을 해오셨고, 요즘은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계신가요?
그동안 주로 커스텀 프로젝트에 많이 투입되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IBM Plex Sans SC*」, 「IBM Plex Sans TC*」 의 한자 제작, 브롤스타즈(슈퍼셀)의 「브롤 디스플레이체」 한글 제작이 있습니다. 산돌 리테일 폰트 중에는 「SD 정체」 의 라틴, 그릭, 키릴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SD 초양」을 마무리 하면서 새로운 커스텀 프로젝트 프로토타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SC(Simplified Chinese)는 중국어 간체, TC(Traditional Chinese)는 중국어 번체를 의미하며, SC는 주로 중국 본토에서, TC는 대만·홍콩·마카오에서 사용된다.
―특별히 애정이 가거나 꼭 언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입사하자마자 맡았던 「IBM Plex Sans SC」요. 이 프로젝트 때문에 입사한 건가 싶기도 했어요. 중국어 만드는 프로젝트니까 기억에 많이 남고요. 학교에서는 한글을 배우고 그렸는데, 한자를 본격적으로 그린 건 처음이었어요. 입사 전에 다른 회사에서 인턴으로 몇 개월 그려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프로젝트는 처음이었거든요.
한자가 이렇게 많은 줄 저도 몰랐어요. 평소에 자주 쓰는 글자는 7천 자 정도인데 폰트로 만들려면 2만~3만 자는 되어야 하거든요. 제가 모르는 글자를 그리면서 '이 글자는 왜 그려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최근에는 산돌에서 주최하는 타입 컨퍼런스인 〈사이시옷〉에서 발표도 하셨는데, 발표 준비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대학교 졸업전시 끝나고는 좀 시원섭섭했는데 그땐 시원함이 더 컸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시원함보다 아쉬움이 더 컸어요. 저는 폰트 만드는 일은 다른 일에 비해 피로감을 덜 느끼는데, 이번에 발표하는 건 좀 힘들었거든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발표하는 거라... 연습을 많이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끝나고 응원하러 오신 분들도 계시고, 쉬는 시간에 명함 주시면서 잘했다고 해주신 분도 있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 산돌에서 일하시면서 작업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개인 작업으로 폰트를 만드는 것과 회사에서 폰트를 만드는 건 많이 다르죠. 예전엔 좀 컨셉추얼한 폰트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가석체」도 엄청 두꺼워서 사실 쓰기 어려운 폰트잖아요. 작은 크기에서 쓰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산돌에서는 리서치를 많이 하고 폰트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FGI*를 통해서 나온 니즈들을 파악하고, 그 니즈에 맞게 폰트를 만드는 거죠. 제가 〈사이시옷〉에서 발표했던 「SD 초양」도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FGI: Focus Group Interview(포커스 그룹 인터뷰)의 약자. 리서치 방식중 하나로 그룹 단위로 진행하는 인터뷰를 뜻한다. 진행을 맡은 모더레이터와 두 명 이상의 참가자가 한 그룹이 되어 질문에 답하고 참여자끼리 자유롭게 토론하기도 한다.
― 이제 본격적으로 「SD 초양」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 볼까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나요?
2025년에 제작할 폰트를 기획하기 위해, 1년 전부터 타겟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FGI를 진행했어요. 2024년 2월에 진행했던 FGI는 디자인 실무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지점을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요. 특히 편집 디자이너들의 인터뷰가 되게 흥미로웠습니다. 거기서 편집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폰트의 테마 세 가지를 추출할 수 있었어요. 1. 귀엽지 않은, 2. 고전 활자의 재해석, 3.새로운 시도.
― '귀엽지 않은'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흥미로운데요.
FGI 인터뷰 대상자였던 민음사의 황일선 이사님께서 「Sandoll 고딕Neo1」랑 「SD 노벰버」 같은, 저희가 ‘현대적’으로 분류한 폰트를 보고 귀엽다고 하시는 거예요. 일반적으로는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폰트들인데, 거기서 귀여움을 발견하셨다는 점이 의외였고,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편집 디자이너들은 산돌 폰트가 주는 전반적인 인상을 ‘귀엽다’고 느끼고 계셨습니다. 특히 책 본문 조판에 주로 쓰이는 직지소프트의 SM 시리즈나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클래식한 서체들과 비교했을 때, 산돌 특유의 꽉 찬 모듈이 상대적으로 귀엽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최근 산돌에서 출시한 민부리 폰트들이 주로 디스플레이 용도에 맞춰져 있다 보니까, 진지한 내용을 다룬다든가 오래 보아야 하는 작업을 할 때는 잘 안 쓰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 그럼 편집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귀엽지 않은' 폰트는 어떤 건가요?
임창섭 디자이너의 「담소」나 이용제·정지혜 디자이너의 「고래실」 같은, 예전 활자를 재해석한 폰트들을 언급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납 활자의 특성이 살아 있어서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고전적인 인상의 폰트들이 ‘현대적’이지 않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Sandoll 고딕Neo1」 나 「SD 노벰버」는 옛날 고전 활자의 특징을 없애고 깔끔하게 다듬은 형태지만, 그 폰트들이 출시되었을 당시의 인상과는 달리, 이제는 더 이상 ‘현대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Sandoll 고딕Neo1」가 출시 당시에는 과거 활자 조형과 명확히 달라서, 그 차이가 현대적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너무 소비되어 버린 장르가 되어 버려서, 더 이상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 '현대적인 폰트', '고전적인 폰트'라는 감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그럼 이 두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이번 프로젝트 하면서 깨달은 건, 디자인 산업군에 따라 관점이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커스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IT 쪽에서는 비교적 폭이 좁은 「Sandoll 고딕Neo1」 나 「본고딕」 같은 걸 ‘현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하시는데, 편집 디자인 쪽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편집 디자이너들은 1950~1990년 사이 제작된 옛날 폰트와, 이 폰트들을 기반으로 요즘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해 출시한 폰트를 구분해 인지해요. 그리고 이렇게 재해석이 담긴 폰트를 더 ‘현대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 그럼 편집 디자이너들은 고전 활자를 새롭게 재해석한 시도를 더 반가워하신다고 볼 수 있겠네요?
체감하기로는 그런 방향이 편집 디자이너분들의 필요와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완전히 낯선 것보다는 고전적인 미감을 현대적으로 다듬었을 때, 세련되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주니까 반응이 좋더라고요.
누군가 '비슷할 용기'라는 표현을 쓰셨던 게 기억나요. 디자이너들도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지만, 실제 작업 환경에서는 익숙함 속의 새로움, 즉 기존 작업과 호환성이 높은 폰트를 필요로 하니까요.
저는 폰트 디자이너가 농부라면, 편집 디자이너는 요리사라고 생각해요. 농부가 아무리 정성껏 재료를 길러내도, 요리사가 만드려는 메뉴와 맞지 않으면 식탁에 오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현대적'이라는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실제 사용자인 디자이너들이 어떤 재료를 필요로 하는지 살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SD 초양」 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선명해지는 과정이었네요. 혹시 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코멘트가 있었나요?
‘어느 정도의 새로움이 적당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때 스튜디오 포뮬러의 신건모 디자이너님이 주신 말씀이 큰 힌트가 됐습니다.
‘너무 낯설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콘셉트만 내세우지도 않은 폰트’의 좋은 예시로 글자연구소의 「공간」을 꼽아주셨는데요. 저도 서점에서 「공간」이 본문으로 쓰인 책을 우연히 본 적이 있어요. 과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신선함이 있더라고요. 「SD 초양」도 딱 그 정도의 인상을 지닌 폰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SD 초양」은 원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그 원전을 찾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엔 원전을 안 찾고 제가 상상하는 대로 그렸어요. 근데 초안을 그리고 나니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디테일은 고전적인 표현인데 뼈대는 아직도 「Sandoll 고딕Neo1」를 벗어나지 못했네?' 결국 중요한 건 특정한 표현이 아니라 글자의 뼈대, 즉 근본적인 구조를 찾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를 참고하기 위해 고른 원전이 바로 《조선말 큰사전》입니다.
뼈대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건, '너무 귀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어요. 그래서 품을 좀 조절했어요. 품이 너무 꽉 차면 귀엽게 보이잖아요. 근데 또 너무 많이 정리하면 《조선말 큰사전》의 뼈대에서 벗어나니까, 이 뼈대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파악하려고 했어요. 뼈대를 따라 그리면서 계속 질문했죠. 이 글자는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 공간은 왜 이렇게 됐는지. 약 800자를 수집해서 하나하나 분석했어요.
《조선말 큰사전》 (을유문화사, 1929~1957)
― 《조선말 큰사전》의 글자에서 어떤 특징을 발견하셨나요?
요즘 글자와는 공간을 다르게 쓰는 감각이 눈에 띄더라고요. 예를 들어 '문'자를 보면 'ㅜ'의 세로획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잖아요. 원전의 다른 글자들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ㅜ’의 세로획을 중앙보다 다소 오른쪽에 두어, 세로획의 왼쪽 공간을 확보하려 한 것이 아닐까? 제 추측이긴 한데 그 특징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귤' 같은 경우도 요즘 글자와 비교하면 중성의 공간감이 차이가 많이 나요. 초성이 차지하는 공간보다 중성이 차지하는 공간의 비중이 훨씬 크죠.
― 사실 우리가 지금 볼 때는 다소 충격적이지만, 이게 한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네요. 점점 초양의 논리에 설득이 되고 있어요.
‘글' 에서 '귤’이 될 때 세로획이 두개나 추가가 되는데 공간을 더 줘야죠. (웃음) 대체적으로 ㅓ·ㅕ·ㅗ·ㅛ·ㅜ·ㅠ'와 같이 짦은 기둥이나 곁줄기, 그리고 ㅔ, ㅐ 처럼 겹기둥의 존재감이 요즘 폰트보다 훨씬 더 큰 편이에요.
― 새삼 그동안 한글 폰트가 참 중성에게 너그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 초성과 종성 같은 자음만 공간 비중을 많이 줬을까요?
그러니까요. 자음과 모음*이라고 하지만, 결국 자음이 ‘아들’이고 모음이 ‘엄마’잖아요.
모음은 자음을 낳고 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죠. 그런데 시각적으로는 자음이 더 눈에 띄잖아요. 그래서 자음에 공간을 많이 주고, 모음은 그 사이사이에 배치하는 구조가 된 거 같아요. 하지만 원전 활자를 보면, 모음에도 존재감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 ‘자음’을 ‘아들’에, ‘모음’을 ‘어머니’에 비유하는 것은, 모음이 있어야 자음이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음은 그 자체로 소리를 낼 수 있는 ‘홀소리’이며, 자음은 모음과 결합해야 비로소 하나의 음절을 이룰 수 있습니다.
― 다른 디자이너들이 좀 ‘선 넘었다’, ‘킹받는다’ 라고 표현한 부분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오히려 제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점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한국 디자이너들과 좀 다르거든요. 저는 이 정도면 재밌고 괜찮다고 생각해서 작업한 요소들을, 다른 분들이 “그건 좀 킹받는다…”고 하면 ‘아 이거 고쳐야 하나?’ 잠깐 고민이 되긴 했죠. 하지만 결국은 그런 시도들이 모여 「SD 초양」만의 개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전의 '꽃' 왼쪽 'ㄱ'을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단순히 파격적인 형태라기보다는, 글자 상단의 좁은 공간을 세 개의 세로획으로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 결과로 보였어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굉장히 논리적인 공간 운용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런 요소들이 과해지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은 특징적인 정도를 조절했습니다. 예를 들어 ‘쏠’ 같은 경우에는 요즘 눈에 익은 형태를 택했어요. 너무 낯설면 사용자가 선뜻 쓰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 제작 과정에서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고 하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느낌만으로 작업한 게 아니라, 일종의 시스템을 세우고자 했다는 게 과학적인 접근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사실 이 프로세스도 엄청 주관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 만든 시스템이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정리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저보다 훨씬 많이 공부하신 분들도 많으실 텐데, 과연 내가 이런 기준이나 프로세스를 만들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 주관적일 수 있지만, 그게 바로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이잖아요. 원전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체계화하는 일이요. 그런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장가석 디자이너님과 정말 잘 맞는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한글의 규칙에 대한 고정관념 없는 시선과 그걸 논리적으로 정리해내는 능력이 돋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