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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레터링 디자이너 김영선

진짜 웃기다. 말은 잘 못한다면서, 얘기를 이렇게 잘 풀 줄이야.
이건 거의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수다였다.
김영선은 그렇게, 글자에 말투를 얹는 사람이다.
모양 하나, 획 하나로 무드와 흐름을 조율하고,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들리게 만든다.

“글자는 되게 경제적인 방식이에요.”
표현보다 구현에 집중하는 실무자의 태도가
이 디자이너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말하는 것도 좋은데, 글자로 말할 땐 더 정확하다.

Intro:
디자이너 김영선이라는 사람


(우리는 인터뷰라기보단 대화를 나눴다. 무겁게 묻지도 깊게 파고들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잘 읽혔다.
김영선이라는 사람은 얘기를 정리하는 대신,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며 풀어놓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게 더 좋았다.)





Y: 요즘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영선: '흥미로운 한글을 그려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접목하는 작업자. ' 요렇게 소개해요. ㅎㅎ 전시나 인터뷰 같은 데서 소개할 일이 생기면 그렇게 계속 말하고 있어요.




Y: 디자이너로서 아끼는 수식어가 있다면요?

영선: ‘시각적인 흥미로움을 추구하고, 그걸 잘 표현하고 싶은’ 디자이너인 것 같아요. 사실 제 작업들을 보면 되게 개성 넘치는 것처럼 보여서 작가적인 마인드가 크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저는 반대로, 오히려 제가 원하는 방향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기획된 의도를 잘 구현해 내고 싶은 사람이에요. 협의나 조율을 통해서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더 잘 드러나게 하는 관객과의 중간자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 작업과 성격의 공통점은 볼드한 것이라 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좀 진정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고.)


Y: 작업을 할 때, 덜어내는 편이신지, 더하는 편이신지.

영선: 완전 전자예요. ㅋㅋㅋㅋ 전 욕심도 많고, ‘소란스럽다’, ‘진정해라’ 이런 말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제 글자 자체도 목소리가 큰 편인 것 같아요. 보통 하고 싶은 거 다 때려 넣고 나중에 덜어내요. 꽉 찬 거 좋아하고요! 주변에서 "야 이제 좀 그만!"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김영선의 레터링 방법론


(이 섹션의 제목을 이렇게 붙여도 되나 고민을 했다. ‘방법론’이라는 말이 어쩐지 김영선 디자이너한테는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정한 규칙대로 나아가는 사람이기보단, 순간적인 느낌으로 손 먼저 움직이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나니, 생각보다 명확하게 ‘방향’과 ‘룰’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자유롭게 휘어지는 선 안의 어떤 질서에 관한 이야기다.)




Y: 글자는 읽는 걸까요, 보는 걸까요?

영선: (미리 질문을 읽고) 근데 이건 정말 반반인 것 같아요. 50 대 50. 왜냐하면 전 잘 읽히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카피로서의 타이틀이나 로고는 너무 당연하고요. 사실 이게 오독이 없어야 요청해 주신 클라이언트도 정확하게 판독해 주실 수 있거든요. 제가 되게 자주 하는 얘기긴 한데, 글자는 되게 경제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사진이나 영상 없이도, 언어로서 무드랑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글자란 ‘시각적인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그게 브랜드 폰트랑도 닿아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고요.

(이 말은 인터뷰 초반에도 나왔는데, 다시 들어도 좋았다. ‘경제적인 방식’, ‘시각적인 목소리’라는 표현은 김영선 디자이너의 일하는 태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Y: 강아지 유치원 우유 'WooU'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강아지 리쉬의 형태를 로고 안에 녹여내셨는데, 이렇게 타이포와 심볼의 경계가 섞일 때, 지키는 나름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강아지 유치원 우유 WooU
국・영문 로고 및 공간 레터링, 슬로건 타이틀 디자인


영선: 레터링으로 로고를 만들 때, 저는 레터링이 텍스트보다는 그래픽 쪽이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레터링은 줄글 텍스트와는 달리 한정적인 글자 수 안에서 균형이랑 조형감이 살아야 하니까,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비전문가인 사람들한테도 직관적으로 와닿을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 그림 그리는 느낌이 더 강하거든요. 그러니까 ‘읽히는 그래픽’이어야 하죠. 그게 동시에 이뤄지는 작업을 지향해요. 막 무르르~ 읽히게 하는? 그런 거 좋아해요. ㅎㅎ




Y: 의뢰가 들어오면, 어떤 걸 제일 먼저 확인하세요?

영선: 어떤 작업이냐에 따라 다른데요, ‘의도’를 먼저 파악하려고 해요. 이 작업이 왜 필요하신지, 왜 하필 저를 떠올려 주셨는지, 어떤 느낌이 필요하신지를 명확하게 여쭤보는 편이에요. 기획 의도나 레퍼런스가 분명하다면 그 안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하고, 만약 되게 열려 있다? 그럼 아예 다른 방식의 시안도 제안하려 해요. 약간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요.



Y: 디지털 환경에서 작업하실 땐, 어떤 걸 제일 먼저 고려하세요?

영선: 디지털 작업할 땐요, 오프라인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보일지 엄청 신경 써요. 크기, 매체에 따라 되게 많이 뽑아서 펼쳐놓고 본다든지, 실제로 디스플레이되는 환경을 좀 고민하는 편인 것 같아요.

Y: 스케치하고 디지털로 옮기는 전환 과정에서는요? 놓치지 않으려는 게 있다면?

영선: 저는 주로 아예 컴퓨터에서 시작하는 편이에요. 성격이 급해가지고. 생각보다 제가 또 스케치나 손으로 그리는 드로잉을 잘 못 그리는 편이에요. 개발새발…? (이런 표현 괜찮나요?) 곡선이 되게 많이 들어가야 한다거나 뼈대를 먼저 정리하고 들어가야 한다거나 할 때는 스케치를 할 때도 있긴 해요.


(이 답변도 참 김영선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떤 원칙보다 먼저 ‘성격’을 말하는 사람.)




Y: 한글과 영문을 같이 사용하는 작업은 훨씬 더 까다로울 것 같아요. 어떤 지점이 가장 어렵고, 또 재밌으세요?

영선: 한글만 쓸 때 비해서, 약간 난이도가 있는 것 같아요. 한글은 가로모임꼴, 세로모임꼴 이런 게 섞여 있고 가로획, 세로획의 균형을 잡는 재미가 좀 있는데, 라틴은 세로획이 강조된 글자다 보니까 한글이랑 영문이 같이 조합되어야 하는 작업에서는 얘네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통일감을 갖출지를 좀 많이 고민하는 편인 것 같아요.

Y: 흥미롭네요. 그럼 여백은요? 꽉 채우는 글자도 많지만, 공간감도 중요하잖아요.

영선: 작업하면서 클라이언트와 많이 얘기하는 편이긴 해요. 예를 들어 전달한 작업이 문장형인데, 세로 배너로 많이 쓰인다면 얘네들을 어떻게 공간감 있게 배치되는 게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를 드릴 때도 있고. 그래서 그분들이 가장 많이 활용할 방식을 확인하고, 꽉 차게 그리는 게 좋을지 혹은 단어 사이사이에 공간이 있게끔 덩어리감을 확실히 주는 편이 좋을지 이런 것들을 고민해요. 근데 저는 기본적으로… 꽉 채우는 걸 좀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Y: 공연, 영화, 소설, 기업 마케팅처럼, 장르가 달라지면 작업의 포인트도 좀 달라지나요?

영선: 약간 공연은, 확실히 그 공연이 어떤 무드인지 분위기인지를 좀 파악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고요. 그 작품을 먼저 감상하고 나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본을 주셔도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에, 주요한 키워드가 뭔지, 관객들이 느끼기에는 어떤 느낌이어야 할지, 이런 것들을 여쭤봐요.

'코끼리들이웃는다' 이머시브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른 차원〉 타이틀 레터링


영선: 예를 들어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 같은 경우에는 이머시브 공연*이어서 동시에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었거든요. 분위기는 되게 신비롭고 으스스하기도 하고, 까마귀가 나오고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관객들이 느끼는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지, 생각보다 되게 밝은 음악이 나오는지 이런 것들을 확인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글자이되, 리듬감을 갖도록 뾰족한 면이나 세리프를 표현해서 흥미롭지만 엉뚱하고, 또 조금 미스테리한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Y: 까마귀 말씀하시니 확실히 보여요. 까마귀들이 나는 어둡고 깊은 푸른색의 하늘이나, 스산한 분위기 같은 것들이요. 그럼에도 영선님만의 통통 튀는 분위기가 살아있는 게 신기하네요.

영선: 오,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여러모로 잘 활용해 주고 계셔서 기분이 좋아요. ㅎㅎ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Performance): 관객이 공연 공간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극의 일부처럼 체험하는 형식

프로젝트 in .PNG

(실제 작업 파일 이름들 옆에 늘 붙는 확장자처럼, 하나하나의 이미지로서 목소리를 가지게 된 그의 글자들 이야기가 이어졌다. 소리 없이도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걸 그의 글자들은 꾸준히 증명해왔다.)




2023~2024 다이나믹 듀오 단독 콘서트 〈가끔씩 오래 보자〉
키비주얼 그래픽 디자인


Y: 다이나믹 듀오는 워낙 오래된 팀이고, 팬들 사이에 감정선도 꽤 진하잖아요. 〈가끔씩 오래 보자〉 콘서트 타이틀 작업하실 땐, 가지고 계셨던 다듀의 이미지나 팬들이 떠올릴 무드 같은 것도 담아보려 하셨나요?

영선: 요청하신 컨셉이 되게 분명했어요. 처음 티징을 봤을 때는 지금 있는 콘셉트 사진이 없던 상태여서, 일단 타이틀로만 전개해야 했었어요. ‘사진이 올 거긴 한데, 티저에는 보정하느라고 사진이 없는 상태다.’ 그런데 그 사진이, ‘황조지’아세요? 황정민이랑 조승우랑 지진희가 낚시하는… 그 컨셉으로 갈 거라고 하신 거였거든요.

Y: 아, 이게 어머...... 어머.

문제의 황조지 사진

다듀의 패러디


영선: 되게 기가 막히게 또 사진을 찍어주셔 가지고... 그래서 약간 소주 냄새 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글자 자체도 소주처럼 회오리친다든지 막 찰랑인다든지, 그런 걸 시원시원하되 레트로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두 번째 하늘색 포스터는 또 올드보이 촬영장에 놀러 간 송강호와 현장에 있던 최민식 배우 컨셉으로 사진을 찍으신 거예요.

Y: 그러면 황조지랑 올드보이 촬영장 두 콘셉을 둘 다 아우르는 게 필요했던 건가요?

영선: 저도 이게 계속 쓰일지는 몰랐는데, 24년에 한 번 더 쓰신 거예요. 너무 잘 어울리게 써주셔서 되게 좋았죠.

올드보이 촬영장에 놀러 간 송강호 사진

다듀의 패러디





Y: ‘타다’는 ‘이동의 기본’이라는 슬로건처럼, 뭔가 안심되는 무드가 있잖아요. 이런 분위기를 레터링에 담으려고 하실 땐, 어떤 식으로 표현해보셨어요?

영선: 『Waaay』같은 경우는 소카랑 타다, 어라운드 매거진이 같이 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였는데요. w에서 y까지의 가는 길에 ‘숨 고르기’의 순간을 담아보자고 상의했어요. a를 그사이에 세번 반복하면서 리듬이 있되, 흘러가듯 천천히 머무는 느낌으로요.


타다 × 쏘카 × AROUND MAGAZINE
이동 인터뷰 프로젝트 『WaaaY』 로고 디자인




킷캣 캠페인 『킷캣하면 빨간날인거야』


Y: 또 『킷캣』 캠페인은 보면서 진짜 ‘식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잘리는 리듬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거 의도하신 건가요?

영선: 킷캣 레터링은 정말 단단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초콜릿 막대처럼 길쭉하고, 똑 부러지는 그 느낌 그대로 살리고 싶어서, '빨' 같은 경우에도 획이 빽빽해서, 킷캣이 4개가 한 봉지에 들어있는데, 그 모양으로 작업했어요. 단단한 산스이면서도 되게 부드러운! 초콜릿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해주셔서 그게 너무 좋았어요. ㅎㅎ




Y: 국립한글박물관 정지용 시인 〈향수〉 충청도 시각화 포스터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충청도 사투리를 시각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영선: 제가 이때 〈소년시대〉라는 영화를 보고 충청도에 꽂혀 있었거든요. 저도 좀 말이 많고 긴 편인데,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말하는 화법이 재미있잖아요. 그 언어유희에 빠져서 충청도로 언어 유학 가고 싶다, 생각하면서… 어쨌든. 근데 마침 이 작업 의뢰가 들어온 거예요, 운명처럼. 그래서 뭐지? 내가 충청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줬구나!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10주년 기획특별전 《사투리는 못 참지!》
정지용 시인 〈향수〉 충청도 시각화 포스터


영선: 작업한 문장이 되게 길잖아요. 충청도의 ‘그랬슈~’ 같은 억양이라든지, 강세라든지, 물 흐르듯이 말하는 재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지용 시인의 시 자체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정취가 느껴지는 내용인데, 국립한글박물관 측에서 관련 지역의 언어에 대해서만 집중해달라고 말씀을 해 주셔서, 부드럽고 느릿한 리듬을 살려 작업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국한박에서 온 거라 멋 좀 부린 것도 있고요. 후후.)




《글짜씨》 20호 뒤집어보기 앰비그램 레터링 디자인


Y: 《글짜씨》 20호에 들어간 앰비그램* 작업, 진짜 미쳤던데요? ‘BRaVE’라는 단어 고르신 이유가 있었나요?

영선: 저는 이거 진짜 머리 터지는 줄 알았거든요. 정말 힘들 때는 한 번씩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게 뭐지. 내 머리로 할 수 있는 건가.’ 별의별 문장을 다 그려보다가 어떻게 운 좋게 나와가지고. ㅎㅎ 그때는 다시는 못 할 것 같다, 생각했었죠.


*앰비그램(Ambigram): 글자나 단어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도 읽히도록 설계된 타이포그래피

레터링과 폰트 사이

(폰트를 쓴다는 건, 이미 누군가 만든 구조를 빌려 말하는 일이다. 「Helvetica」로 ‘사랑’을 쓴다면, 그건 「Helvetica」라는 말투로 사랑을 전하는 셈이다. 그런데 레터링은 조금 다르다. 감정이든 의도든, 그 순간의 문장을 스스로 쓰는 쪽에 가깝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서툰 곡선, 얇은 획으로 그리면 그건 ‘어색한 사랑’이 되고, ‘처음인 사랑’이 되기도 한다. 같은 단어지만,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Y: ‘폰트는 문장을 빌리는 거고, 레터링은 문장을 쓰는 거다’라는 말이 있던데요. 이 문장,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영선: 아 그 문장! 보자마자 헐 멋있다~ 하고 공감 엄청 했어요. ㅎㅎ 레터링이란 게 어떻게 보면 문장을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거잖아요. ‘킷캣’ 같은 프로젝트도 그 아이템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드는 거였으니까요. 결국 브랜드의 새로운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업 같아요.




Y: ‘29CM’에서 퇴사 전에 레터링 베이스의 타이틀을 직접 만들어서 남기셨다고요?

‘29CM’ 영문 대문자 타입 파생


영선: ‘29CM’ 의 로고는 원래 있었는데, 정작 거기에 맞는 폰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재직 당시에 ‘내가 레터링도 할 줄 아는데,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퇴사 전에 만들어서 드리고 나왔어요. ㅎㅎ 영문 대문자만 만들었었는데, 잘 조합해서 활용하시는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우주식민지체」 Type Design


Y: 「우주식민지체」에 관해서 이야기 안 해 볼 수가 없어요. 학생 때 만든 폰트라고 하셨는데, 무려 892자나 파생하셨어요. 그 시절의 집착(?)이 보였달까요. ㅎㅎ

영선: 그건 진짜 학생 때 했던 건데요. 김의래 교수님 수업 들으면서, 테드 강의 하나 보고 가상의 컨퍼런스 주제로 포스터랑 책자 만드는 과제였거든요. 그때 제가 폰트 쪽 관심 많으니까 선생님께서 “이번 기회에 폰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셔서 만든 게 「우주식민지체」였어요. 근데 일정이 촉박해서 다 못 만들겠는 거예요. 그래서 날카롭기도 하고 반짝이는 요소와 잘 어울리는 인상을 가진 「HY크리스탈」 폰트의 뼈대를 참고하여 작업을 했어요. 별 요소 막 들어가고, 우주여행 컨셉이라 미로처럼 디자인하고. 지금 보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부끄러운데, 그땐 완전 혼자 취해서 만들었죠. 근데 이건 진짜 나올 일 없는 폰트입니다. 하하.




전주국제영화제 JIFF, 『100 FILMS, 100 POSTERS』 2023
〈나는 피아노를 버렸다〉


Y: 〈나는 피아노를 버렸다〉 포스터에서 채희준 디자이너의 「신세계」 폰트를 쓰셨던 것도 인상 깊었어요.

영선: ‘전주국제영화제’가 국제 영화제인 만큼 영문이랑 한글이랑 같이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영문과 잘 어울리는 폰트를 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얇은 현에 의해 연주되는 단단함과 유려함, 가구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세밀하고 세심한 장식적인 것과도 잘 어울리는 국문와 영문의 섞어짜기가 잘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단 제가… 채희준 디자이너님의 팬이에요. ㅎㅎ 희준님은 정말 천재인 것 같아요. 이 사람 혹시 인생 2회차인가, 싶을 정도로 매번 나오는 것마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신규 폰트도 매우 기대 중이에요. 후후.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각진 원형 : 김용관〉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Y: 지금까지의 작업 중 폰트와 레터링의 경계가 가장 흐릿했던 프로젝트는 뭐였나요?

영선: 부산시립미술관 『각진 원형』 키비주얼 작업이요. 이게 「꼬딕씨」예요. 각진 원형이라는 전시의 주제와 잘 연결되도록 글자 자체도 다각형의 요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키비주얼과 더불어 전시장에 보여지는 전시 제목과 설명글에고 통일되게 반영하려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글자들을 작업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원형 글자들('o', 'c' 같은 것들)을 다 다각형으로 바꿔서 썼어요. 그냥 「꼬딕씨」 글자 가지고 변형해서 작업한 거죠. 근데 다행히 「꼬딕씨」가 워낙 잘 만들어져 있어서 변형이 잘 됐어요. ㅎㅎ



29CM 인터널 브랜딩 '이구다움'


영선: 29CM 인터널 브랜드 '이구다움' 타이틀도, 국문은 「Sandoll 고딕Neo1」을 모양자 형태로 커스텀했어요. 영문이랑 닮아 보이게 하려고요. 브랜드에서 쓰는 규정 폰트랑 조화롭게 맞추는 게 목적이었거든요.




글자는 어떻게 말을 거는가

(글자는 어떻게 목소리를 갈고 닦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만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Y: ‘글자가 글자 이상일 때’란, 어떤 순간일까요?

영선: 저는… 그 말이 레터링이 가진 힘 그 자체 것 같아요. 레터링은 그 문장을 위해서 나온 형태고, 보는 사람에게 단서와 힌트를 엄청 많이 주는 작업이니까요. 예를 들어 킷캣 보셨을 때 쪼개지는 느낌, 바삭거리는 질감… 그런 거 느끼셨잖아요? 그런 게 잘 전달됐을 때, 그게 전 제일 좋아요.


Y: 속삭이듯 말하는 글자 vs 외치듯 말하는 글자 — 본인의 작업은 어디쯤?

영선: 전 거의 소리치는 편인 것 같아요. ㅎㅎ 시끄럽고요. 볼드하고요. 하하.




Y: 문장의 톤은 어디서 결정된다고 보세요?

영선: 저는 ‘인상’ 같아요. 글자는 보는 사람에게 첫인상을 남기잖아요. 그래서 전 전달자로서 소통을 잘해야된다고 생각해요.

Y: ‘인상’을 특별히 신경 쓰신 프로젝트가 있다면?


《나를 움직이는 문장들》 단행본 타이틀 디자인


영선: 《나를 움직이는 문장들》 단행본 타이틀 작업이 있는데요. ‘29CM’ 현직 카피라이터가 자신을 움직인 문장들을 모아놓은 책이거든요. 기존에 쩌렁쩌렁 외쳐 왔다면, 이건 조금 더 단정하고 절제된 표현이지만 친근한 인상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했어요. 좀 더 볼드할 수 있냐는 요청도 있었는데, 이 정도의 웨이트가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씀도 드리고 그랬답니다.





29HOME SNS
온드미디어 아이덴티티 디자인


Y: 『29HOME』 캠페인 작업은 색감이 진짜 통통 튀더라고요. 컬러가 키비주얼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영선: 라이프 스타일을 다채롭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니즈와 잘 맞아서, 채도 높은 컬러들을 썼던 프로젝트였어요. 제가 색깔 다양하게 쓰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저희 집에는 진짜 모든 색이 다 있어요. 저희 이모가 집에 오시면 정신 나갈 것 같다고 할 정도로. ㅋㅋㅋㅋ 또 ‘그리는’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색칠하는 질감을 그래픽 요소로 사용했어요.



Y: 이건 B안인가요? 색상이 너무 귀여워요.

영선: 사인펜을 사용해서 그렸을 때, 끝에 똥이 살짝 뭉치는 걸 표현한 시안이었어요. B안이 되었지만, 이때도 색을 열심히 썼었어요.




영선: 글자에 목소리를 더하는 작업이라면, 전 후가공도 진짜 좋아해요. 예를 들면 수조 안에서 공연하는, 〈물질〉이라는 창작공연이 있었는데, 그 비주얼이 물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 창작공연 〈물질〉
공연 홍보물 그래픽 키비주얼


영선: 그래서 그걸 살리려고 도공지 같은 아트 계열 종이를 쓰고, 에폭시처럼 반짝이는 가공도 넣고 싶었죠. 결국 예산 이슈로 안타깝게 하진 못했지만… 그런 재질 고민할 수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사람들이 ‘물 냄새 나는 거 같다’고 하면 너무 뿌듯하죠.


GROWTH: 김영선의 성장

(질문을 던질수록 작업보다 사람이 보였다. 시행착오, 기획과 실행 사이의 간극까지 그는 모두를 ‘경험’이라 말했다. 마지막엔 어떤 글자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인지를 물었다.)




Y: 관객의 시선이 작업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나요?

영선: 저는 디자이너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돈을 받고 의뢰받은 거고, 서비스를 잘 전달하게 만드는 역할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은가’보다는, ‘이걸 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항상 첫 번째예요. 유저나 관객 등 이 작업물을 보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저는 항상 그게 전부예요.


Y: 가장 나 자신을 바꿔놓은 프로젝트와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영선: 『Movelog』(무브로그)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부터 기획, 아이덴티티, 웹, 시작부터 런칭까지 많은 부분에 참여하고 주도한 프로젝트였고, 사실 처음 시도해 보는 게 많다 보니 저에게 엄청나게 많은 경험치를 가져다준 프로젝트였어요. 물론 그 초반 과정에서 웹 디자인에 있어서 무지렁이에 가깝던 제 이해도 때문에 고생하신 개발자분들도 계셨지만, 모르는 것을 여쭤보고 이해하고 공부하고, 그것을 계속 반영해 나가면서 나중에 제 피그마 페이지를 보면 초반 작업과 비교해 거의 환골탈태(?)에 가까울 정도로, '나 이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라는 걸 많이 깨닫게 해준, 너무너무 소중하고 맵싹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의 사이에서 오가는 소통 방식과 단계, 그리고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기획자가 바라보는 좋은 프로젝트, 개발자가 만들어 나가는 좋은 프로젝트에 대한 기준과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걸 다 해내고 나니,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디자이너 이상의 태도를 배웠던, 저에겐 정말 큰 프로젝트였어요.


타다 아카이브 웹 프로젝트 『Movelog』


영선: ‘이동’이라는 감정과 경험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낼지 고민하게 만든 작업이기도 했어요. 당시가 코로나 시기였어서, 이동이라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때라, 창밖의 서울이라는 도시가 익숙하면서도 괜히 좀 새롭게 보이는 시선을 담아보자는 의견을 모았어요. 그래서 로고도 프렌치 필름처럼, 조용히 감정이 스며드는 글자였으면 좋겠다고 기획을 거치며 방향을 합의했습니다. ‘l'이랑 'o’도 그래서 합자처럼 흐르듯이 그렸고요.




Y: 커리어적으로는 지금이 어떤 상태라고 느끼세요? 10년 후, 또 10년 후에는요?

영선: 저는 역시 회사가 맞는 사람 같아요. 사회 초년생 때 프리랜서를 1년 정도 했었는데요, 그때 느낀 위기의식이 내가 잘하는 것만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그게 싫었어요. 친구들은 스튜디오나 에이전시에 들어가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데, 나는 타이틀 작업이랑 키비주얼 작업만 하다간 그거밖에 못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회사에서 카드 뉴스든 현수막이든 리플렛이든 여러 직무의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어떤 것들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설계되고 유지되는지도 알고 싶고요.

Y: 다양한 디자인 작업에 갈증이 있으셨군요.

영선: 그리고 솔직히, 외롭기도 했어요. ㅎㅎ 슬퍼도 혼자, 기뻐도 혼자, 항상 혼자니까, 너무 외로운 거예요. 여럿이 함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여전히 더 재미있고 팀으로 일하는 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 안에서 더 나은 방향, 솔루션을 찾는 실무자의 태도를 갖고 싶어요. 저는 회사에 있는 게 좋아요.


Y: 김영선 디자이너님께 여전히 손글씨, 혹은 손으로 적는 행위가 중요한 순간이 있다면?

영선: 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저는 손으로 글자를 그리는 사람이에요. 레터링도 어떻게 보면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것에 기반한 행위이거든요. 글자가 그려진 부분이 실제 손으로 쓴다고 했을 때 불가능한 형태면 안 되잖아요. 그럼 그 방향이라든지, 방식이 되게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글자 자체가 ‘쓰기에 기반한 도구’이고, 레터링이 여전히 ‘글자답게’ 보이느냐, 쓰기 방식에 위배되지 않느냐, 그게 역시 저에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Y: 마지막으로, 만약 내일부터 디자인을 못 하게 된다면,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영선: ‘나보다 잘하지 마라.’ ㅋㅋㅋㅋ


in sight of TASTE!

SPEEDY 10문 10답


Q1. 피드에서 무의식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게 되는 시각 요소는?
털동물

Q2.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색 조합은?
레몬+파랑
분홍+파랑
하늘+초록+노랑
비비드와 네온 사이
(Y: 거의 다인데요?) (영선: 네 사실. ㅎㅎ)

Q3. 내 사진첩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미지는?
비즈

Q4. 최근, 글자 말고 가장 오래 바라본 사물은?
판다

Q5. 최근 꽂힌 음악/책/영화/인물이 있다면?
하와이 우쿨렐레 음악

Q6. 작업할 때 무한반복하는 노동요는?
유튜브 hawaiian cafe 라이브 채널 영상

Q7. 요즘 가장 자주 여는 앱은?
인스타그램

Q8. 작업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한 문장(혹은 좌우명)은?
빨리… (잘) 끝내자

Q9. 한동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취향 or 완전히 떠나보낸 취향은?
다시 돌아온 – 글라스데코

Q10. 요즘 가장 질투 나는 디자이너는?
A24



김영선'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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