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리스너들을 위한 K-POP 앨범 폰트 추천
: K-POP 덕후들의 월급을 훔치는 폰트들 : 2026 케이팝 상반기 결산
우리는 무슨 민족? 배달의 민족? 도파민의 민족이죠. 우리에게 도파민이란 뭘까요? K-POP이죠.
고된 노동을 할 때나, 대중교통에서 무표정으로 내적 댄스를 출 때나, 화장실에 있을 때나, 우리는 K-POP과 함께합니다.
올해 상반기는 그냥 뜨거운 정도가 아니었어요. 한터차트 집계로 상반기 K-POP 음반 판매량이 약 4,953만 장,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거든요.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복귀, 블랙핑크의 10주년, 코르티스, 아이오아이의 재결합까지.
2세대부터 5세대가 한 무대에 몰려 나온 슈퍼 사이클이었습니다.
그만큼 앨범 표지도 물량이 어마어마했다는 뜻이고요.
6월의 문을 막 닫은 지금, 2025년, 아니 2026년 K-POP 중간 결산. 아직 식지 않은 열기의 K-POP 앨범들은
어떤 타이포그래피와 폰트 계열들을 사용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01. 앨범을 액자처럼
시작은 조금 반칙 같은 이야기예요. 올해는 아예 타이포그래피를 쓰지 않는 앨범들이 유독 많이 등장했거든요.
글은 기본적으로 '설명'하는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텍스트를 아예 비워버리면, '우린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다'는 무심함이나 자신감이 오히려 도드라져요. 이미지 한 장이 완성된 회화라면, 글자는 굳이 그 위에 얹지 않아도 되는 사족이 되기도 하죠. 아래 엔믹스, 르세라핌, 샤이니의 앨범을 보면 아주 작게 로고와 앨범명 정도만 들어가 있을 뿐입니다. 표지를 한 장의 액자처럼 다루는 이 방식은 '우리는 비주얼로 승부 본다'는 가장 대담한 선언이기도 해요.
〈HAWWAH (夏渦)〉, dodree (도드리) (2026.06.24)
〈Lemon Tang - The 2nd Mini Album〉, Hearts2Hearts (하츠투하츠) (2026.06.22)
〈Ode to Love - The 1st Album〉, NCT WISH (2026.04.20)
〈Heavy Serenade〉, NMIXX (2026.05.11)
〈'PUREFLOW' pt.1〉, LE SSERAFIM (르세라핌) (2026.05.22)
〈Atmos - The 6th Mini Album〉, SHINee (샤이니) (2026.06.01)
#02. 낙서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져
색연필로 쓱싹쓱싹 내 맘대로!
글자를 걷어낸 표지가 있었다면, 반대로 글자를 '그린' 표지도 많았어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각을 잡은 완벽한 레터링보다는, 다시는 똑같이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 파일화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글자 그림'에 가까운 디자인들이 속속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스테이씨, 있지, 피프티 피프티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보다 발랄함이 앞서는 그룹들에는, 다채롭고 산뜻한 색연필·크레용 같은 재료가 참 잘 어울려요.
〈2:LOVE〉, STAYC(스테이씨) (2026.06.16)
〈Motto (Remixes)〉, ITZY (있지) (2026.05.22)
〈Imperfect-I'mperfect〉, FIFTY FIFTY (2026.06.01)
반면 보이그룹의 두들 레터링은 결이 조금 달라요. 얼핏 히어로 카툰의 한 장면이나 공책 귀퉁이에 대충 끄적인 낙서처럼 보이는 타이포그래피는, 귀여운 악동 같은 유쾌한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PERMISSION〉, 태민 (TAEMIN) (2026.05.22)
〈Like I Do〉, 조권 (2026.03.27)
〈No School Tomorrow〉, ALPHA DRIVE ONE (알파드라이브원) (2026.05.26)
그중 알파드라이브원의 신보에는 지난 하반기 결산에서 에스쿱스·민규의 〈HYPE VIBES〉, NCT DREAM의 〈BEAT IT UP〉, TWS의 〈Play Hard!〉로 소개하기도 했던 두들 스타일이 그대로 엿보여요. 우리 알드원 친구들 이번 스케줄러 너모너모 귀엽네유~ 두들 코믹스 같은 스타일이 참 에디터의 취향입니다. (참고로 알드원은 2026년 데뷔 신인인데도 상반기 밀리언셀러 반열에 이름을 올렸어요. 낙서로 시작해 밀리언이라니, 낙서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참고로 요런 분위기의 앨범을 낸 여돌, 당연히 있습니다.
바로바로 우리의 러브캐쳐 예나씨!! 너무 귀여워요...
〈LOVE CATCHER〉, YENA (최예나) (2026.03.11)
#03. 통통하게 사랑스럽게
색연필이 '손맛'이었다면, 이번엔 '촉감' 차례예요. 획을 잔뜩 부풀려 둥글둥글하게 만든 레터링은 젤리 같기도, 구름 같기도, 풍선껌 같기도 하죠.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VAYONN의 〈Watta Day〉는 통통 튀는 볼드 스크립트로 여름 아침 같은 산뜻함을, 아이린의 〈Biggest Fan〉은 핑크빛 버블 레터링으로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했어요. 그리고 하츠투하츠의 〈RUDE!〉는 아예 하늘에 뭉게구름으로 'RUDE!'를 띄워버렸습니다. 글자를 구름으로 그린다는 발상 자체가, 이 '통통함' 트렌드의 정점 같아요.
Y2K 버블·젤리 감성의 부활인데, 밝고 몽글몽글한 걸그룹 콘셉트와 이보다 잘 맞는 옷이 없죠. 만지고 싶은 글자, 라는 표현이 딱입니다.
〈Watta Day〉, VAYONN (2026.06.23)
〈Biggest Fan - The 1st Album〉, 아이린 (IRENE) (2026.03.30)
〈RUDE!〉, Hearts2Hearts (하츠투하츠) (2026.02.20)
#04. 유기적 획
25년 상반기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걸그룹의 앨범 표지의 왕좌를 지켜온 건 유기적인 획과 스크립트 폰트였어요. 대표적으로 작년 3월 KiiKii의 〈UNCUT GEM〉 같은 앨범들이 있었죠.
붓이나 펜이 지나간 흔적처럼 획의 굵기가 자연스럽게 변하는 이 계열은, 손글씨 특유의 온도와 리듬을 그대로 품고 있어요. 마마무의 〈4WARD〉, 유나의 〈Ice Cream〉, 우주소녀의 〈Bloom hour〉, 츄의 〈XO, My Cyberlove〉, 리센느의 〈[RESCENE X ???]〉까지. 필기체 한 줄로 앨범의 감정선을 단번에 그어버리는 사례들입니다. 특히 서정적인 발라드나 청량한 여름 곡일수록, 이 흐르는 획이 유독 잘 어울려요.
〈XO, My Cyberlove〉, 츄 (CHUU) (2026.01.07)
〈[RESCENE X ???]〉, RESCENE (리센느) (2026.02.27)
〈4WARD〉, 마마무 (Mamamoo) (2026.06.04)
〈Bloom hour〉, 우주소녀 (2026.02.25)
〈Ice Cream〉, 유나 (ITZY) (2026.03.23)
그냥 유기적 획은 심심해
그런데 이 흐름이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이제는 단순히 필기체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봐요. 글자에 아예 '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Say It〉, AtHeart (앳하트) (2026.06.25)
〈Secret Flavor〉, 시크릿 (2026.06.18)
〈ICONIC BY MISTAKE〉, LE SSERAFIM (르세라핌), 아일릿(ILLIT), KATSEYE (2026.06.12)
특히 하이브 레이블즈 소속 세 걸그룹 LE SSERAFIM(르세라핌), 아일릿(ILLIT), KATSEYE(캣츠아이)의 협업 싱글 〈ICONIC BY MISTAKE〉는 비즈 공예나 레진 스티커를 연상시키는 장식적인 타이포그래피로 큰 화제를 모았어요. SNS에서는 "휴대폰 꾸미기 스티커 같다", "2000년대 문방구 감성이다" 같은 반응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죠.
사실 이 협업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서로 다른 레이블(쏘스뮤직·빌리프랩·하이브-게펜) 소속 세 팀이 깜짝 합체하는 건 케이팝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 팬들은 세 팀을 묶어 '캣세라릿'이라는 애칭까지 붙였고, 곡은 빌보드 핫100에까지 진입했습니다. 그 화제성을 표지 하나로 요약한 게 바로 저 반짝이는 비즈 레터링이었던 거죠. 글자가 곧 콘셉트가 된 셈이에요.
#05. 세리프와 고급스러움
여기서부터 표지의 온도가 한 단계 내려갑니다. 한동안 케이팝 앨범은 산세리프의 시대였어요.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글자가 '세련됨'의 기본값이었죠. 그런데 올해 상반기, 획 끝에 살짝 걸린 삐침(세리프)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세리프는 글자에 격(格)을 입혀요. 같은 단어라도 세리프로 쓰면 어쩐지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지고, 잡지 화보 같은 무드가 감돕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세리프를 택한 앨범들은 하나같이 '진지함'과 '고급짐' 사이 어딘가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어요.
얇은 세리프로 이름을 눌러 앉히면, 표지 전체가 한층 차분하고 성숙한 온도로 내려앉습니다. 특히 솔로 아티스트들에게 세리프는 '나 이제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기도 하죠.
〈QUINTESSENCE〉, 태양 (2026.05.18)
〈DEADLINE〉, BLACKPINK (2026.02.27)
〈RE : LOVE〉, Apink (에이핑크) (2026.01.05)
〈SEVEN : CRIMSON HORIZON〉, AB6IX (에이비식스) (2026.03.16)
재밌는 건 화사의 〈So Cute〉예요. '귀엽다'는 단어를, 정작 하나도 안 귀여운 넓고 진중한 세리프로 벌려 놓았거든요. 단어의 뜻과 글꼴의 온도가 어긋날 때 생기는 이 묘한 긴장감. 세리프가 아이러니의 도구로도 쓰인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So Cute〉, 화사 (HWASA) (2026.04.09)
액체 질감의 연출
세리프가 '격조'라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게 '물성'입니다. 글자의 표면이 수은처럼 흐르고, 크롬처럼 반사되고, 물방울처럼 맺히는 연출이죠. 획은 여전히 세리프의 골격을 유지하는데, 그 위에 액체 같은 질감을 한 겹 입혀 차갑고 미끄러운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킥플립의 〈From KickFlip, To WeFlip〉은 공책 같은 하늘색 바탕 위에 은박·크롬 느낌의 글자를 올려, 소년들의 풋풋함과 미래적인 광택을 동시에 잡았어요. 박지훈의 〈RE:FLECT〉는 아예 제목부터 '반사(reflect)'를 품고 있는데, 글자가 물빛에 젖어 번지듯 흐르면서 몽환적인 톤을 완성합니다.
Y2K 크롬 리바이벌의 연장선이면서도, 단순히 '반짝'에서 멈추지 않고 '흐름'과 '반사'까지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화한 흐름이에요. 차갑지만 고급스럽고, 미래적이지만 어딘가 관능적인. 액체 레터링은 올해 세리프 유행의 가장 세련된 변주였습니다.
〈From KickFlip, To WeFlip〉, KickFlip(킥플립) (2026.01.20)
〈RE:FLECT〉, 박지훈 (2026.04.29)
#06. 블랙레터 + 세련미
세리프의 격조에서 조금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블랙레터가 나옵니다. 중세 필사본이나 신문 제호에서 오던 이 서체는, 뾰족하고 촘촘한 획 덕분에 진지하고 무거운 인상을 주죠. 그런데 최근엔 힙합·스트리트 신을 거치며 오히려 '멋'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어요. 관건은 이 강한 개성을 얼마나 세련되게 다스리느냐입니다.
리센느의 〈Runaway〉는 흐르는 스크립트에 블랙레터의 장식성을 살짝 얹어 우아한 이니셜을 만들었고, 강민의 〈Free Falling〉은 'KANGMIN' 워드마크에 블랙레터를 써서 스트리트한 무드를 더했어요. 그리고 보이넥스트도어의 첫 정규 〈HOME〉은 돌인지 점토판인지 모를 표면에 블랙레터를 통째로 새겨 넣어, 마치 유물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데뷔 이래 '근본'과 정공법을 밀어붙여 온 팀답게, 오래된 서체를 오래된 물성 위에 얹어 '오래 남을 것'을 만든다는 태도가 표지에 그대로 담겼죠.
블랙레터는 그대로 쓰면 촌스러워지기 쉽지만, 획을 정리하거나 예상 밖의 재질과 붙이면 이렇게 단숨에 세련돼집니다.
〈Runaway〉, RESCENE (리센느) (2026.04.08)
〈Free Falling〉, 강민 (2026.03.26)
〈HOME〉, BOYNEXTDOOR (2026.06.08)
#07. 산세리프
이제 온도가 가장 낮은 구간이에요. 장식을 전부 걷어낸 산세리프는 반짝이는 레터링의 유행과 동시에 정반대 흐름으로 전면에 등장합니다.
장식을 다 걷어내면 '균형'이 남는데요, 헬베티카로 대표되는 중립적 산세리프는 화려한 개성 대신 정직함으로 승부해요. 글자 자체는 조용하지만, 그만큼 자간·여백·정렬 같은 배치가 전부 드러나는 정공법의 서체죠. 잘 쓰면 더없이 세련되고, 못 쓰면 그냥 밋밋해지는 — 실력이 곧바로 티 나는 글꼴입니다.
말수가 적은 서체일수록, 남기는 여백이 곧 목소리가 됩니다.
길쭉하고 늘씬한 단호함
올해에도 길고 마른 글자들이 존재감을 드러냈어요. 폭을 좁게 압축한 콘덴스드(Condensed) 스타일은 화면 안에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특유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처럼 담담한데, 이상하게 시선은 계속 머물게 되는 글자죠.
모두 장식보다는 비례와 리듬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사례인데요, 특히 대문자 중심의 좁은 산세리프는 올해 K-POP에서 가장 세련된 선택지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NO) REASON〉, 윤산하 (2026.05.20)
〈SUGAR HONEY ICE TEA〉, BABYMONSTER (2026.06.08)
〈GOLDEN HOUR : Part.4〉, ATEEZ(에이티즈) (2026.02.06)
〈GREENGREEN〉, CORTIS (코르티스) (2026.05.04)
〈Who is she〉, KISS OF LIFE (2026.04.06)
〈REVIVE+〉, IVE (아이브) (2026.02.23)
〈Sequence 01: Curiosity〉, AND2BLE (앤더블) (2026.05.26)
〈FEELM〉, 82MAJOR(82메이저) (2026.04.28)
〈BOTH SIDES - The 1st Mini Album〉, NCT JNJM (2026.02.23)
퓨쳐리스틱
같은 산세리프라도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SF 영화의 인터페이스처럼 보이는 '퓨처리스틱 산세리프'가 됩니다. 자간은 과감하게 벌어지고, 일부 글자는 의도적으로 잘려 나가거나 변형돼요. 차갑고 미니멀한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어딘가 미래적인 이 스타일이, 올해 여러 앨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TWS의 〈Dream With Us〉, 영화 《와일드씽》의 가상 그룹 트라이앵글의 〈TRIANGLE〉, 그리고 〈NO TRAGEDY〉는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모두 미래적인 산세리프를 중심으로 디자인된 사례입니다.
〈Dream With Us〉, TWS (투어스) (2026.06.11)
〈TRIANGLE〉, 트라이앵글 (2026.05.22)
〈NO TRAGEDY〉, TWS (투어스) (2026.04.27)
#08. 한글 레터링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가 눈에 밟혀요. K-POP 앨범에서 한글 제목은 여전히 드물다는 것. 글로벌 시장을 고려하면 영문 타이틀이 훨씬 익숙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독 한글이 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TWS의 〈다시 만난 오늘〉과 H1-KEY의 〈세상은 영화 같지 않더라〉는 제목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한 대표적인 앨범이에요. 길고 담백한 문장을 그대로 레터링으로 풀어내면서, 글자를 읽는 순간 이미 음악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만들죠.
〈다시 만난 오늘〉, TWS (투어스) (2026.02.09)
특히 〈세상은 영화 같지 않더라〉는 앞서 본 블랙레터 특유의 고전적인 구조를 한글로 재해석한 점이 인상적인데요. 블랙레터를 그대로 가져오면 자칫 무겁고 중세적인 인상을 줄 수 있지만, 획을 단순화하고 여백을 정리하면서 훨씬 세련된 분위기를 완성한 점이 눈에 띕니다. 영문 블랙레터가 스트리트로 갔다면, 이쪽은 서정으로 간 셈이에요.
〈세상은 영화 같지 않더라〉, H1-KEY (하이키) (2026.01.05)
영문 로고가 브랜드를 만든다면, 한글 레터링은 감정을 만듭니다. 올해 상반기, 오랜만에 그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해준 앨범들이었습니다.
#09. 플러스 알파!
마지막으로, 온도 순으로는 딱 잘라 넣기 애매하지만 에디터가 개인적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두 장이 있어요. 천재 디렉터 전소연이 이끄는 i-dle 공주님들, 그리고 10주년을 맞아 눈물 속에 컴백한 아이오아이입니다.
먼저 i-dle의 〈Mono〉. 제목 그대로 'Mono'라는 단어의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M, O, N처럼 속공간(Counter)이 중요한 글자들로 이루어진 만큼, 카운터를 작고 묵직하게 설계한 레터링이 안정감을 만들어내요. 글자를 읽는 동시에 검은 면과 빈 공간이 함께 보이는 디자인이죠.
〈Mono (Feat. skaiwater)〉, i-dle (아이들) (2026.01.27)
발매 당시엔 타이틀곡 크레딧에 리더 소연의 이름이 없어서 팬들이 술렁였는데, 알고 보니 크레딧에 적힌 정체불명의 작곡가 'icebluerabbit'이 바로 소연 본인이었다는 반전이 있었죠. 이름을 숨긴 채 콘셉트에만 집중하겠다는 선언 같은 거였어요. 미니멀한 제목, 미니멀한 크레딧, 미니멀한 레터링. 앨범 전체가 'Mono'라는 한 단어로 관통합니다.
그리고 아이오아이의 앨범은 모노스페이스 특유의 균일한 리듬이 레트로 프로필 사진 콘셉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2010년대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냈어요. 유행을 좇기보다 콘셉트와 타이포그래피가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무엇보다 9년 4개월 만의 재결합이자 데뷔 10주년 기념작인 이 앨범의 표지는 프로필 사진을 격자로 나란히 배치하고 모노스페이스로 정보를 정갈하게 새긴 '그때 그 소녀들이 여기 그대로 다시 모였다'는 서사 그 자체예요!
〈I.O.I 3rd MINI ALBUM [I.O.I : LOOP]〉, 아이오아이 (I.O.I) (2026.05.19)
이렇게 해서 2026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앨범 타이포그래피 트렌드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색연필 낙서부터 크롬 액체, 뭉게구름 버블부터 칼날 같은 콘덴스드까지.
따뜻한 손맛과 차가운 미니멀이 같은 시기에 나란히 트렌드였다는 것. 그 자체가 2026 K-POP의 체력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앨범을 재생하기도 전에, 표지만 보고 심장이 먼저 반응한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시죠?
그 짜릿한 첫인상을 만드는 데에 폰트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이번 결산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지셨다면 좋겠습니다.
하반기엔 또 어떤 글자들이 우리 지갑을 노리고 찾아올까요? 에디터의 디깅은 하반기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See you in Dec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