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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만나는 문구와 책, ‘텍스트힙’의 현재

'텍스트힙' 열풍은 어디까지? | 인벤타리오·서울국제도서전 돌아보기

'텍스트힙' 열풍은 어디까지? | 인벤타리오·서울국제도서전 돌아보기

이번 트렌드 디깅에서는 올여름 코엑스를 가장 뜨겁게 달군 두 페어를 함께 돌아볼게요. 노트와 펜,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진풍경, 그 열기의 정체를 디깅해 봤어요.


 

코엑스를 둘러싼 두 번의 긴 줄

 

2026년 6월, 강남 코엑스에는 유독 긴 줄이 두 번 섰어요. 하나는 지난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더 플라츠 홀을 가득 채웠던 문구 페어 인벤타리오(INVENTARIO), 다른 하나는 지난 주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이죠. 한쪽은 펜과 노트, 다른 한쪽은 책. 디지털 시대에 가장 ‘올드’할 것 같던 두 카테고리가, 올여름 가장 뜨거운 오프라인 행사가 됐어요.

 

올해로 2회를 맞은 인벤타리오는 규모를 지난해의 두 배로 키워 103개 브랜드가 참여했고, 닷새간 약 4만 명이 다녀갔어요. 첫 회의 2만 5,000명을 훌쩍 넘긴 기록이죠. 사전예매는 물론 당일 예매까지 바로 매진될 만큼 인기가 많았어요.

 

서울국제도서전의 규모는 한 자릿수 더 컸어요. 18개국 약 538개 출판 관계사가 참여했고, 주최 측 추산 약 15만 명이 코엑스를 찾았는데요.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평일 오전 7시부터 입장 대기 줄이 생겼고, 첫날 오전부터 인기 부스의 책과 굿즈가 품절될 만큼 뜨거웠어요. 흥미로운 건, 2025년 성인 종합 독서율이 38.5%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에요.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책과 문구를 ‘즐기는’ 문화는 오히려 폭발하고 있는 거죠.

 

물론 흥행의 이면에 과제도 남았어요. 도서전은 ‘책보다 굿즈’로 무게추가 쏠렸다는 상업화 논란, 그리고 부스 선정의 공공성 논란이 함께 따라붙었거든요. 이에 일부 출판사들은 같은 기간 노들섬에서 ‘서울제대로도서전’을 따로 열기도 했답니다. 뜨거운 인기만큼이나 ‘이 열기를 어떻게 책으로 되돌릴까’라는 고민도 함께 커진 셈이에요.

 


 

 

우리는 왜 문구와 독서에 빠졌을까요?

 

이 붐을 한 단어로 줄이면 바로 ‘텍스트힙(Text Hip)’이에요. 글자(Text)와 힙(Hip)을 합친 말로, 읽고 쓰는 행위 자체를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즐기는 흐름을 가리키는데요. 그 안에는 이런 마음들이 숨어 있어요.

 

핵심 요약: 텍스트힙이 사랑받는 4가지 이유

➊ 반(反)도파민 — 빠른 자극에 지쳐 ‘느린 기록’에서 쉼을 찾고요
➋ 취향의 도구 — 어떤 펜·어떤 책을 두느냐가 곧 ‘나’의 표현이 되며
➌ 기록 그 자체가 콘텐츠 — 쓰고 찍고 공유하는 과정까지가 즐거움이고
➍ 소장과 희소성 —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한정판이 소장 욕구를 부르죠

 

쇼츠와 릴스의 빠른 자극에 지친 세대가 손으로 쓰고 천천히 읽는 행위에서 휴식을 찾고, 어떤 펜을 쓰고 어떤 책을 책상에 두는지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요. 그렇게 '기록하는 나'를 SNS에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책과 문구는 읽고 쓰는 도구를 넘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됐죠. 도서전 현장에서 "책보다 굿즈 예산을 더 많이 잡았다", "굿즈를 사러 새벽에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 것도 이 때문이에요.

 

 


 

 

사람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은 브랜드

 

인벤타리오에서 기록가들의 마음을 훔친 부스

 

올해 인벤타리오는 디자인 감각이 유독 돋보였는데요. 비주얼 파트너로 참여한 PaTi(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가 '모양자'를 모티프로 행사 전체의 그래픽 시스템을 짜서 그런지 더욱 감각적인 인상을 더했어요. 그중에서도 인벤타리오에서 기록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부스들을 모아봤어요.

 

① 포인트오브뷰 × 헬로키티


출처: 포인트오브뷰

 

포인트오브뷰와 산리오 헬로키티 캐릭터의 콜라보레이션 부스는 이번 인벤타리오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공간 중 하나였어요. 창작 세계에 몰입한 헬로키티의 다채로운 페르소나를 뱃지와 키링, 그리고 포인트오브뷰의 노트 위에 담아 더욱 소장 가치가 높아진 아이템들을 선보였죠. 

 

 

② 오이뮤(OIMU)


출처: 오이뮤

 

오이뮤는 1972년부터 꾸준히 크레파스를 만들어오고 있는 '티티경인'과 함께 제작한 <티티파스> 리마스터드 에디션을 공개했어요. 티티경인의 크레파스와 오이뮤의 '색이름'이 만나 어릴 적 문방구에서 보던 크레파스가 세련된 오브제로 다시 태어났죠.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오이뮤답게, 『우리집 가훈 276』을 새롭게 선보여 모두의 공감을 사기도 했어요.

 

 

③ 양지사


출처: 양지사

 

오랜 시간 다이어리와 수첩을 만들어 온 양지사도 리마스터드로 합류했어요. 양지사의 오랜 시그니처 제품이었던 'PD수첩'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한정 에디션을 선보였는데요. 익숙한 업무용 수첩이 '갖고 싶은 문구'로 바뀌는 순간, 헤리티지 브랜드의 저력을 새삼 보여줬어요.

 

 

④ 지구화학


출처: 지구화학

 

'지구 색연필'로 우리에게 친근한 지구화학은 올해 70주년을 맞이해 특별한 지구색연필을 준비했어요. 미니 버전의 지구 슈퍼 색연필과 틴케이스, 그리고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Pick & Keep 색연필을 선보였는데요. 부스에서 원하는 색연필을 직접 조합해 나만의 색연필 세트를 만드는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어요. 정해진 세트를 사는 대신 내 손으로 색을 고르는 경험을 제공해 소비자들이 단순 '제품'을 넘어 '경험'을 소비하게 하는 순간을 선사했죠.

 

 


 

 

서울국제도서전을 뜨겁게 달군 부스들

 

도서전에서는 부스 자체가 곧 콘텐츠가 되었어요. 김영사는 부스를 헬스장처럼 꾸민 '짐영사'로, 예스24는 독서와 러닝을 결합한 '리딩런'으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중 특히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된 세 곳을 짚어볼게요.

 

 

① 민음사


출처: 민음사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민음사 부스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어요. 한쪽 벽면을 통째로 캡슐 토이 공간으로 꾸미고, '오늘의귀여움'과 함께 세계문학전집 일러스트를 캐릭터와 콜라보한 스티커·핀버튼·키링·책갈피·안경닦이 등 다양한 굿즈를 선보였는데요.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고전 문학이 오늘날 대중적인 캐릭터들과 만나면서 훨씬 더 친근하고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만들었어요.

 

 

② 문학과지성사


출처: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는 재활용 가능한 종이 구조물을 활용한 부스로 또 한번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번 도서전에서는 굿즈보다는 책에 더 집중한다는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특히 한지를 활용한 특별판 서적으로 독자의 소장 욕구를 정확히 건드렸죠. 평소 아끼던 작품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표지로 다시 만나는 경험은 책 한 권이 굿즈만큼이나 강력한 소장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트렌드를 정확히 보여줬어요.

 

 

③ 안전가옥


출처: 안전가옥

 

1년만에 반갑게 돌아온 안전가옥은, '아무렇게나 읽는 것이 어때서'라는 슬로건과 함께 <장르덤프>라는 테마로 부스를 힙하게 꾸며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독서의 딱딱하고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즐기자는 메시지를 전했죠. 안전가옥 부스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이벤트도 있었는데요. 안전가옥의 도서 7권 이상 구매한 관람객을 위한 짐 보관소를 운영하는 기발하고 다정한 기획으로 호평을 받았어요.

 

 


 

 

텍스트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

 

두 페어를 돌아보면, 사람들이 사는 건 제품만이 아니라 '이 도구로 어떤 나를 기록할까', '이 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날까'라는 경험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줄을 서고 연차까지 내며 오프라인 페어를 찾는 마음의 바탕에는 결국 텍스트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하고 있었던 거죠.

 

물론 이 열기가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해요. 굿즈와 한정판이 책보다 앞선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이렇게라도 책과 가까워지는 게 반갑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으니까요. 텍스트힙이 한 철의 유행으로 스쳐갈지, 읽고 쓰는 문화를 한 뼘 더 넓히는 흐름으로 자리 잡을지 — 그 방향은 우리가 이 열기에서 무엇을 '경험'으로 남기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번 여름에는 한 번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펜과 종이, 책이 다시 사랑받는 지금, 내가 정말 경험하고 싶은 텍스트는 무엇인지를요. 다음 트렌드 디깅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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