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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취향과 애정의 이름으로!

in sight of 키치로맨틱

노을빛 감성이 물든 그래픽으로 로맨틱한 무드를 완성하는
키치로맨틱 김이슬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 키치로맨틱 김이슬 디자이너

빠르게 변하는 K-POP 트렌드 한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애정으로 감정과 언어를 전하는 디자이너.
'키치로맨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온 김이슬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하나의 글자, 하나의 질감에도 진심을 담는 그녀의 작업 일지 속에서
‘좋아서 하는 일’이 얼마나 강한 에너지가 되는지 느낄 수 있었죠.
오랜 시간 취향을 단련해 온 자신의 감각을 무기로,
도전을 즐기는 디자이너 김이슬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Intro:
나를 이루는 단어들

―안녕하세요, 이슬님. 몇 년 전 인터뷰에서는 ‘아트 디렉터’라고 소개하셨는데, 요즘은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제가 한 3년차, 5년차까지는 제 스스로가 작가인지 디자이너인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예전에는 제가 개인 작업 위주로 많이 했었고 전시도 많이 했었다 보니 작가에 더 가깝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제는 의뢰를 받는 작업도 많이 하게 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디자이너들도 작가적 성향을 많이 띄기도 하고요. 그래서 최근의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에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 여전히 저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고민 중이에요.



―그렇다면 그래픽 디자이너로써 가장 듣기 좋은 수식어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요즘은 제가 K-POP 아이돌 분들의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보니 감사하게도 팬분들의 피드백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그 중에서 듣기 좋았던 건 ‘감다살’이라는 말이요. “감다죽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도 했었고요. (웃음) 그리고 어떤 분께서는 ‘이 분은 진짜 자기가 좋아서 작업하는 게 보인다’라고 해 주셔서 그 반응은 캡처해 놓고 가끔 보기도 해요. 사실 저도 밤낮 안 가리고 즐겁게 작업했었던 프로젝트였는데 그게 결과물로 전달된 것 같아서 되게 좋았어요.

―이슬님 작업을 보면 정말 좋아서 하는 것 같은 진심이 느껴져요. 그럼 본인의 작업이 성격과도 닮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네,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이고 확실한 걸 좋아하는데요. (웃음) 아무래도 브랜딩이나 공간 디자인보다는 훨씬 기한이 짧고 타이트해서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하거나, 빠르게 끝나는 경우도 많고요. K-POP의 경우에는 반응이 되게 빠르잖아요. 예를 들어 자정에 릴리즈 되면 10분만 지나도 바로 실시간으로 반응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제 성격이랑 잘 맞아요. 그리고 제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장르나 기획 방향을 만날 수 있어서 작업하면서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되니까 좋더라고요.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8월호 '뉴 잭 스윙이란 레트로토피아' 풀 페이지 디자인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와 작업했을 때 ‘뉴 잭 스윙’이라는 음악 장르를 주제로 타이포와 페이지 디자인을 했었는데요. 이 ‘뉴 잭 스윙’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해서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봤었거든요. 이 시기에 나온 음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앨범 커버는 어땠고, 폰트는 어떤 걸 썼는지. 이런 식으로 장르마다 깊게 공부하고 작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가볍게 겉핥기 식으로만 하면 이 장르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이 봤을 때 웃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키치'와 '로맨틱'이라는 키워드를 작업의 정체성이자 이름으로 삼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제 작업을 소개하는 단어로 ‘키치하고 로맨틱한 무드'라는 말을 항상 썼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장난감 모으는 걸 좋아했거든요. 입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장난감 가게도 많이 갔었고… 어렸을 때부터 제 취향이었던 걸 작업에 많이 녹여낸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하면서 항상 자주 쓰게 되는 색들이 노을이 지는 색감을 많이 쓰는데, 그 색깔들을 저는 ‘로맨틱하다’고 표현하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키치로맨틱’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어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Goodday


―만약 '키치'하고 '로맨틱'한 무드를 벗어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면요?

그런 고민도 요즘은 하고 있어요. 제가 계속 ‘키치로맨틱'으로만 활동하면 이런 분위기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고착이 될 것 같아서요. 나중에는 앞 글자의 ‘kits’만 따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제 자신을 브랜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톤의 디자인을 하다 보면 맥시멀한 요소들을 많이 활용하게 될 것 같은데, 특별히 경계하거나 덜어내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너무 뻔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 조합은 너무 교과서 아닌가?’ 싶은 요소들은 지양하려고 하죠. 또 너무 많은 색을 쓰면 과해지고 촌스러워 보일 수 있어서 어떤 요소가 제일 주인공이 될지 정하고 나머지 것들은 눌러주는 편이죠. 이것도 저것도 다 주인공이 되지 않게, 무질서 안의 질서라고 할까요.

―무질서 안의 질서… 이게 제일 어려운 거잖아요.

그쵸. 저도 다른 분들이랑 협업하면서 느끼는 건데 요소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서 볼 줄 아는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히 K-POP 작업을 할 때는 아티스트의 특성에 대해서 더 깊게 공부하고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맞게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하는 편이에요.




―키치로맨틱을 작업자로만 알았었는데, 클래스나 워크숍도 여러 번 진행하셨더라고요. 교육하시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받으실 것 같아요.

네, 사실 K-POP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개인 레슨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가르치는 일도 좋아하거든요. 누적 수강생 분이 한 백 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되게 다양한 인연을 만났었어요. 예전 수강생 분 중에 한 분이 산돌 폰트 이용권 쿠폰도 주셨었어요. 본인은 두 장 있으시다고. (웃음)

―정말요? 이렇게 또 인연이 닿았었군요.

그러니까요. 그리고 저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제가 가르쳤던 분들은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크게 단체로 수업했던 경우가 아니면 다 기억을 하고 있는데… 영감이라기보다는 저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던 경우가 많았어요. 그땐 제가 3~5년차였으니까 저보다 훨씬 더 오래 일을 하신 분들도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기억에 남는 분 중에 한 분은 북디자이너셨는데, 마지막 수업 때 본인이 공부하실 때 쓰셨던 인쇄 관련된 책이랑 박 샘플지를 선물로 주신 거예요. 알고 봤더니 그 책이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이너 분들이 인쇄 실무에서 많이 추천하시는 책이더라고요. 저도 그 책으로 인쇄 공부할 때 많이 도움이 됐고요.

『디자이너를 위한 인쇄색상 매칭 실무가이드』

박 전용 컬러 차트

K-POP 트렌드 속
pop!한 타이포그래피


NCT WISH [SONGBIRD EXPRESS] 마이크로 웹 사이트 디자인


―사실 이 작업으로 키치로맨틱을 처음 알게 됐어요. 이때 저희 회사 안에서도 다들 웅성웅성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NCT WISH와 「Sandoll 광수투」의 만남이라니…!

이건 받자마자 고민도 안 했어요. 이건 무조건 광수체여야만 해요. 원래 이 폰트가 유행이었을 당시부터 좋아했어요. 그때는 제가 학생이었는데 그때도 저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거든요. Sandoll 광수, Yoon 사춘기(현재 학교안심 붓펜), Rix 개봉박두… 그 시절 유행했던 폰트들을 되게 좋아했어요. 근데 그중에서도 광수체가 원조잖아요. 요즘 나온 폰트들 중에서 이런 느낌을 찾아보려고 해도, 광수체여야만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도 없이 이 폰트를 썼죠.

――그 시절 감성이 너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심지어 국문, 영문에 일문 페이지까지 제작되었더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일본어 폰트는 또 다른 폰트로 페어링을 해야 해서 열심히 찾았죠. 국문, 영문은 「Sandoll 광수」를 사용했고 일문은 「Kiwi Maru」를 사용했어요.

NCT WISH [SONGBIRD EXPRESS] 국문•영문•일문 버전 키비쥬얼



―K-POP 작업하실 때는 다국어 폰트를 쓸 일이 자주 있으시겠어요. 다국어 폰트를 쓸 때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한글은 받침이 있는 문자를 쓰니까 공간을 제일 적게 차지해요. 그리고 보통 한국어 버전으로 먼저 컨펌이 되니까 한국어 레이아웃으로 기준으로 삼는데요. 그래서 한국어를 기준으로 공간이나 여백을 다 맞춰놓은 다음에 영문이나 일문 버전을 작업하면 글자가 더 길어지다 보니까 자간이나 커닝을 맞춰줘야 되죠. 그리고 한글 폰트와 어울리게 무드에 맞는 폰트를 다시 찾아서 페어링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전소미 [Ice Cream] 카운트다운 라이브 디자인


이 작업에서 「블레이즈페이스」 폰트를 선택한 이유도 한글과 영문을 혼용해서 쓰기 좋아서예요. 원래 「블레이즈페이스」가 영문 폰트인데 함민주 디자이너님께서 한글 버전을 제작하신 걸 알고 있었거든요. 특히 이 작업은 영문의 느낌이 중요했는데, 물론 대부분 한글 폰트에도 영문이 포함되어 있지만 마음에 드는 건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역으로 영문 폰트 중에서 한글도 쓸 수 있는 걸 생각하다 보니까 이 폰트가 딱이더라고요. 컨셉추얼한 느낌이 그래픽이랑도 잘 어울려서 잘 선택했던 것 같아요.



Hearts2Hearts [S2cret Diary] 타이틀 로고, 그래픽 에셋 작업


―하츠투하츠의 작업에서도 타이틀을 영문 폰트로 작업하셨어요. 이 작업에서는 어떤 부분을 신경 쓰셨나요?

앨범 타이틀에 들어간 ‘S2’의 하트 요소를 살려서 작업했어요. 스와시를 변형하고 강조해서 소문자 'y’에도 하트를 표현했고요. 폰트는 Sproviero Type의 「Fabiola Script」를 사용했어요.

―요즘 특히 걸그룹 아티스트들의 앨범에는 스크립트 계열의 영문 폰트가 많이 사용되는 것 같은데요. 이슬님께서 느끼기에 최신 케이팝 디자인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확실히 타이포를 변형해서도 많이 쓰고, 큼직하게 쓰는 게 유행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질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글리터나 레이스처럼 만져보지 않아도 촉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그런 요소들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요즘 시각적으로 질감이나 촉감을 표현하는 작업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저도 최근에 실물 작업들을 하다 보니까 제가 만든 게 손으로 만져지는 게 확실히 더 좋더라고요. 한번 보여드릴까요?



ILLIT [I’ll change it : PUPPY LOVE] 포토북 디자인


―온라인으로 보는 거랑 실물로 보는 건 확실히 다르네요. 실물로 보니까 이건 표지에 후가공을 신경 쓰신 티가 나요.

맞아요. 제가 또 후가공 너무 좋아하거든요. 저는 후가공 모임도 했었어요. (웃음) 같이 스터디 하는 디자이너 분들끼리 모여서 모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앨범이나 영화 포스터를 가져와서 여기에 쓰인 게 뭘까 서로 추리하고… 일본의 유명한 인쇄 관련 책을 가져와서 같이 보기도 하고, 후가공 잘 된 사례를 공유하기도 하고… 그때 모임에서 배웠던 게 큰 도움이 됐죠.

―후가공 모임이라니 너무 힙한데요? 평소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이렇게 작업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거네요.

그쵸. 포토북 표지에는 석고의 질감을 표현하려고 했던 건데요. 원하는 질감의 종이를 찾고 싶어서 제지 회사와 미팅도 하고, 텀블벅에서 후가공 종이 모음도 펀딩해서 사고… 웬만한 후가공 종이들은 다 살펴보고 고르는 과정을 거쳤었죠.

―정말 작업에 진심이시네요… ‘PUPPY LOVE’ 타이틀은 픽셀처럼 도트로 표현하신 부분이 눈에 띄어요.

이건 글자가 반짝거리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제가 동대문 가서, ‘핫픽스’라고 작은 큐빅을 엄청 많이 샀어요. 밀집도가 어느 정도 되고 어떤 느낌이 나는지 눈으로 직접 보려고… 포토북 표지에는 형압으로 들어가서 의도한 대로 잘 표현이 된 것 같아요.




NCT WISH [poppop - The 2nd Mini Album] Highlight Medley


―NCT WISH의 하이라이트 메들리 작업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짧은 시간 안에 곡의 무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상 안에서 타이포가 빛을 발한 것 같아요.

사실 이 작업은 이렇게 곡마다 타이틀을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제작한 거였어요. (웃음)

―정말요? 단일 폰트로만 제작해도 되는 거였어요?

원래는 하이라이트 메들리 영상의 전반적인 그래픽 정도만 요청을 받은 건데…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인데 제가 하고 싶어서 타이틀까지 만들었어요. 제가 예전부터 앨범 아트를 작업한 경험이 많다 보니까, 오히려 타이포로 표현하는 건 어렵지 않고 재미있어요. 젤리나 초콜릿처럼 맛있는 질감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어요.

―그럼 음악의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얻으시는 편인가요?

저는 가사를 제일 먼저 보는 편이에요. 보통 음악에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가사에 있으니까, 가사를 보면서 곡을 듣다 보면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작업할 때 그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작업해요. 노래를 알아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작업으로도 잘 녹여낼 수 있게 되니까요.




―지금까지 폰트와 타이포그래피를 잘 사용해 주신 작업들에 대해서 여쭤봤는데요. 그래픽 디자인에서 폰트의 무게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어떤 문장은 특정한 글꼴이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SONGBIRD EXPRESS]에서 산돌 광수체가 아니면 안 됐던 것처럼요. 글꼴은 문장의 뜻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 문장의 메시지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살릴 수 있는 게 폰트이다 보니까, 작업의 의도에 맞는 폰트를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전에 하신 다른 인터뷰에서 “한글 폰트 디자인을 준비 중”이라고 봤는데요. 언젠가 이슬님의 폰트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직도 준비 중이고 계속 준비 중일 것 같은데요. (웃음) 그리고 한글 폰트가 (난이도로) 최고봉인 것 같아서 제가 감히 도전하기가… 일단 레터링을 먼저 통달한 뒤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아름다운 구속’ 한글 타이포그래피

좋아서 하는 일, 그 진심이 닿은 순간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9월호 '젠지들의 키워드' 풀페이지 및 키워드 작업


―지금까지 작업해 오신 스타일이 y2k 유행이 돌아온 시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느꼈는데, 이슬님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유행이라는 게 항상 10년 주기로 돌잖아요. 이제 제 시대가 온 거죠. (웃음) 이건 농담이고, 사실 저는 항상 같은 걸 좋아해왔고 제가 좋아하는 대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저는 키치하고 귀여운 걸 좋아하듯이 누군가는 다른 걸 좋아할 수도 있고, 각자 잘하는 게 다 따로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가 돌아온 거죠.

―사실 레트로는 시대가 지나도 항상 늘 트렌드니까요. 시대가 변하면 지났던 유행이 또 트렌드가 되고.

맞아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되는지, 유행하는 걸 해야 되는지. 그런데 저는 어차피 유행이 돌고 돌아서 내가 잘하는 게 유행하는 시기가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저는 이걸 진짜 완전 깊게 좋아했어요. 어디 가서도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저는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하다 보면 유행은 돌아오니까 그동안 열심히 닦아놓고, 시기가 오면 잘 올라타고. 그리고 유행하는 트렌드를 섞어가면서 계속 작업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Y2K 로고 타입 디자인




IU [UAENA 8th OFFICIAL FANCLUB KIT] 아이유 유애나 8기 팬클럽 키트 디자인


―아이유의 공식 팬클럽 키트 디자인도 하셨어요. 볼륨이 되게 큰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전체 패키지를 모두 디자인 하신 건가요?

캐릭터 디자이너 분은 따로 계셔서 캐릭터만 다른 분께서 작업해주셨고요. 그 외에 타이틀 로고부터 디바이스, 굿즈, 박스까지 키트 구성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작업했습니다. 8기라는 숫자에 맞춰서 ‘8LEIN(에일이언)'이라는 콘셉트와 몇 가지 키워드를 주셨고 거기에 맞춰서 코스믹한 느낌이나 크롬 아트를 녹여내서 제작했습니다.

―이 작업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무래도 볼륨이 큰 작업이었고 팬분들께도 의미가 깊은 아이템이어서 심적으로 부담이 되게 컸어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아이유 님이 팬분께 달아주신 댓글을 보게 된 거예요. 회사에서 맡긴 일의 부담감 때문에 힘들다는 글이었는데, 아이유 님께서 댓글로 회사에서도 본인을 믿고 맡겼을 거라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을 더 믿어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더라고요. 이게 저한테도 너무 너무 필요한 말이었거든요. 심지어 제가 작업하고 있던 아티스트 분이 해주신 말이니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일기에도 적어두고 엄청 힘을 얻어서 작업했던 기억이 있어요.

―2D 그래픽 디자인에서 3D, 그리고 물성이 있는 실물 디자인으로 넘어갈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는 메타인지가 빠른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못하는 것도 빨리 알거든요. (웃음) 제가 못하면 빨리 포기할 줄 알고, 누군가한테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맡길 수 있다면 협업하는 걸 택하죠. 예를 들어 제가 타이틀 로고를 작업하더라도 모션 그래픽 파트는 능력자인 친구와 같이 협업하는 식으로요. 어떻게 해야 더 잘 구현할 수 있는지를 저보다 더 잘 알고 더 빨리 할 수 있으니까요. 특정 분야에서 잘하는 작업자와 함께 협업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키치로맨틱의 초창기에는 앨범 아트 디자인만 해오시다가, 최근에는 앞에서 질문드린 타이틀 로고나 패키지 디자인까지 영역을 더 넓히셨어요. 도약할 수 있던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항상 이런 영역까지 다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아무도 저한테 그런 일을 맡기지 않을 때에도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텀블벅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열어서 다이어리를 팔고, 스티커도 팔고 그랬었거든요. 그리고 레터링도 더 잘하고 싶어서 한글 레터링 수업도 들으면서 한참 공부하고 있을 때 타이틀 디자인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구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온 느낌이랄까요.

―원래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라고, 지금까지 쭉 해오셨던 작업들이 다 밑바탕이 된 거죠.

사실 텀블벅에서 했던 다이어리 프로젝트가 적자였어요. 텀블벅에서는 후원 성공으로 보이지만 만드는 데 들어간 제작비가 더 많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아직까지도 집에 재고가 쌓여 있어요. (웃음) 그런데 저는 이게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제가 이걸 만들어 볼 수 있었고, 저를 몰랐던 사람들이 제 프로젝트를 샀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의미가 있었어요. 저는 계속 제가 좋아서 한 일을 쭉 하고 있었더니 하고 싶었던 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로맨틱레코드' 다이어리 키트


―앞으로도 이렇게 물성이 있는 작업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네, 분명히 오프라인 작업을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런데 오프라인은 기교 없이 정직하고 디테일하게 잘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온라인으로는 그 오프라인 작업물의 한계나 모자람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물은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그래서 오프라인 작업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온라인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K-POP 앨범이나 굿즈는 팩샷을 예쁘게 잘 만들어야 그걸 보고 구매를 결정하거든요.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해야 되는 거네요. (웃음)

변하는 것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

―위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이야기 했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키치로맨틱의 스타일에 가장 큰 변화를 준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NCT WISH의 [SONGBIRD EXPRESS] 작업이 제일 큰 변화를 주었던 것 같아요. 약간 로맨스판타지 소설 주인공처럼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루아침에 화제가 되어 있어서… 얼떨떨하고 감사한 일이었죠. 그때쯤이 딱 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시기여서 ‘이 일을 더 해도 될까’ 고민을 하던 차였는데 감사하게도 이 일이 들어왔어요. 처음엔 ‘내가 잘못 봤겠지’ 생각하고 답장도 미뤘었거든요. (웃음) 그 정도로 저도 저를 믿지 못할 때였는데, 이 프로젝트 기획을 보자마자 제가 너무 자신 있고 하고 싶은 일이어서 수락할 수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저도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시기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너무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나 매체가 있다면요?

제가 한 2-3년간 꿈꿔왔는데… 키치로맨틱이라는 이름으로 북페어에 한번 참여해보는 게 꿈이에요. 독립 출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독립 출판 수업도 들었었고요. 그런데 이제 글을 쓰자니 글은 너무 부끄럽고, 아트북은 단가가 비싸기도 하고, 일도 계속 들어오다 보니까 지금은 조금 미뤄두고 있는데… 언젠가는 꼭 독립 출판을 해보고 싶어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AI를 활용한 생성형 이미지


―이슬님은 AI 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AI를 잘 활용하고 있는 디자이너로서 AI에 대해 어떤 시선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AI 툴이 생긴 뒤로 제가 쓸 수 있는 툴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의도한 바를 잘 살릴 수 있게 프롬프트를 쓰면 시간도 훨씬 절약되고 활용도가 엄청 높거든요. 아이데이션 할 때도 많이 활용하고, 작업과 관련해서 리서치할 때도 예를 들어 어떤 시기에는 어떤 게 유행했고 이런 걸 찾을 때도 유용하게 쓰고 있고요.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대체가 가능했다면 AI가 없었어도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영감을 받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산책할 때 영감을 많이 받는데요. 제가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길거리에서 웃긴 간판을 보면 모으는 취미가 있어요. 제가 한글 레터링 공부를 할 때 레터링을 너무 잘하고 싶어서 이런 간판들을 수집하고 아카이빙하는 SNS 계정을 따로 만들었거든요. 이런 걸 모으다 보면 나도 이런 글자 한번 그려볼까, 하고 만들어 보기도 하고요. 개인 작업 중에 '걸스나잇'이라는 레터링이 있는데 그것도 간판을 보고 꼬리가 길게 이어지는 글자를 그려보고 싶어서 만든 거였어요.


키치로맨틱 개인 작업: ‘걸스나잇’ 한글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제 알고리즘을 항상 정리하거든요. 제 인스타그램이나 X(트위터)는 제가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 기반으로 추천되잖아요. 그래서 제 피드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관심 없음’을 누르고 좋은 디자인 작업물이나 영감이 되는 것들만 ‘좋아요’를 눌러요. 이게 저한테는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거든요.

―피드를 철저하게 관리하시는 거네요. 이건 진짜 꿀팁인데요?

네, 일부러 디자인 관련된 것만 계속 보고 계속 추천해서 제 알고리즘을 최적의 환경으로 만들어놔요. 인스타그램 탐색 탭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정신 팔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늘 자기 전에 알고리즘을 정리하고 보고 싶지 않은 건 안 뜨게 없애버려요.

―이건 왠지 답변이 예상되는 질문인데요. 이슬님은 디자이너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이 일이 저랑 되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일도 취미이고 일 말고는 특별히 다른 취미도 없어서 모든 게 다 일이랑 연관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일에만 빠져 있다 보면 어떨 때는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제가 미워질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일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취향을 만들어 놔야 일 없이도 내가 무너지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완전 확고하게 알아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술을 마시면 어떤 종류의 위스키를 좋아하는지, 파스타를 먹으면 어떤 파스타 면을 좋아하는지… 이런 걸 엄청 세세하게 알아두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러면 이게 또 일이랑 연관되는 게, 제가 위스키 중에서는 진을 좋아하는데 진이 원래 약으로 쓰이던 거라서 술병이 이런 모양이고 어떤 패키지에 어떤 글씨를 썼는지 이런 것들도 막 찾아보게 되고요. 맥주를 마실 때도 맥주가 독일에서 발달된 거라 독일에서 많이 쓰인 블랙레터를 패키지에 많이 쓰고…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제 자신을 알고 싶어서 취향을 만들다 보면 결국 다시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제 생활 안에서 계속 순환이 되는 거죠.

―본인의 취향을 확고하게 알아두는 게 결국 더 깊은 디깅으로, 또 작업의 표현으로도 이어질 수 있겠네요. 이제 마지막 공통 질문 드릴게요. 아직 한창 필드에 계시지만, 필드를 떠나기 전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는?

음… 내가 무언가 만들고 싶을 때는 나를 되게 잘 알아야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좋아서 하게 되면 더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내가 관심 있고 잘 아는 것들을 표현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고요. 그래서 그냥 유행하는 거, 남들이 잘하는 걸 하려고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그걸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in sight of TASTE!

SPEEDY 10문 10답


Q1. 피드에서 무의식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게 되는 시각 요소는?
다시 보고 싶은 것, 디자인 레퍼런스

Q2.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색 조합은?
핑크 + 보라

Q3. 내 사진첩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미지는?
나의 작업 이미지
(부족한 부분이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들여다보는 편)

Q4. 요즘 가장 자주 여는 앱은?
인스타그램

Q5. 작업할 때 무한 반복하는 노동요는?
작업 중인 아티스트의 노래

Q6. 최근 꽂힌 음악이 있다면?
GASOLINE - Måneskin

후추 소금 탈리스커를 좋아하는 이슬님의 취향 플레이리스트


Q7. 작업실 책상에서 없으면 안 되는 물건 세 가지는?
노트, 다이어리, 필기구

Q8. 작업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한 문장(혹은 좌우명)은?
헤맨 만큼 내 땅이다

Q9. 한동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취향은?
장난감 수집 (한동안 식었다가 최근 패키지 보는 재미로 다시 관심 갖는 중)

Q10. 요즘 가장 질투 나는 디자이너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년생 디자이너들

"저는 그 사람의 작업이 너무 예뻐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이 사람이 이 일을 이렇게까지 사랑하는구나, 나도 저렇게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질투하거든요. 요즘 멋있는 분들 많으시지만 저는 오히려 이제 시작하는 분들, 대학생 분들이 질투 나는 것 같아요.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은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막 나누려고 하시잖아요. 그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그때만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 저도 계속 그런 상태로 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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